어린 왕자 전문, 생텍쥐페리의 유명한 고전 다시 읽기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 전문입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등장인물입니다.

어린 왕자, 조종사, 장미꽃, 여우, 뱀, 왕, 허영심 많은 남자, 술꾼, 사업가, 가로등을 켜는 사람(점등인), 지리학자, 장미꽃들, 철도원, 장사꾼, 천문학자 등이 나옵니다.

어린 왕자의 가장 심오한 명대사는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 Ce qui est important, ça ne se voit pas… »


어린왕자


어린 왕자 전문 


레옹 베르트에게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데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빈다.

그럴 만한 중대한 이유가 내게는 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귄 가장 훌륭한 친구가 이 어른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 그것은 이 어른이 모든 걸 어린이를 위한 책들까지도

모두 이해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 이유는 이 어른이 프랑스에 살고 있는데 그곳에서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위로받아야 할 처지에 있다.

이 모든 이유들이 그 래도 부족하다면 예전의, 어린 시절의 그에게 이 책을

바치기로 하겠다. 어른들은 누구나 다 처음엔 어린 아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따라서 내 헌사를 이렇게 고친다.


< 어린 소년이었을 때의 레옹 베르트에게. >


내 나이 여섯 살 적에, 나는  '자연의 진실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원시림에 관한 책에서 근사한 그림 하나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보아뱀 한 마리가 맹수를 삼키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걸 옮겨 놓은 그림이 위에 있다. 그 책에 이런 말이 있었다.


보아뱀은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킨다. 그런 다음 몸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어 먹이가 소화될 때까지 여섯 달 동안 잠을 잔다. 나는 그 그림을 보고 나서 밀림의 여러 가지 모험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며, 드디어는 나도 색연필을 들고 나의 첫 그림을 용케 그려 내었다.


나의 그림 제 1호, 그건 다음과 같았다.


나는 내 걸작을 어른들에게 보여주며 내 그림이 무섭지 않느냐고물어 보았다. 어른들은 대답했다. "아니, 모자가 다 무서워?"


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게 아니라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을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아뱀의 속을 그렸다. 어른들에겐 항상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내 그림 제 2호는 아래와 같았다.


어른들은 나에게 속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보아뱀의 그림따위는 집어 치우고, 차라리 지리나 산수, 역사, 문법에 재미를 붙여 보라고 충고했다. 나는 이렇게 해서 내 나이 여섯 살적에 화가라고 하는 멋있는 작업을 포기했다. 나는 내 그림 제 1 호와 제 2호의 실패로 그만 기가 죽었던 것이다. 어른들은 자기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 때마다 자꾸자꾸 설명을 해 주자니 어린애에겐 힘겨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직업을 골라야 했고, 비행기 조종을 배웠다. 나는 세계의 여기저기 제법 많은 곳을 날아다녔다. 그 덕분에 나는 한 번 쓱 보아도 중국과 아리조나를 구별할 수 있었다. 밤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때 지리는 매우 편리하다. 나는 이렇게 살아오는 동안 착실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 자주자주 접촉을 했다. 나는 오랫동안 어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아주 가까이서 보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내 의견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좀 똑똑해 보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항상 품고 다니던 내 그림 제 1호를 꺼내 그를 시험해 보곤 했다. 그가 정말 이해력 있는 사람인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늘 이런 대답이었다.


'그건 모자로군요.'


그러면 나는 보아뱀 이야기도 처녀림 이야기도 별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나는 그가 알아 들을 수 있는 트럼프 이야기, 골프 이야기, 넥타이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그 어른은 분별 있는 사람을 또 하나 알게 되었다고 아주 흐뭇해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해서 진심을 털어 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이 혼자 살아왔다. 그러다가 육 년 전, 사하라 사막에서 비행기 사고를 만났던 것이다. 기관의 부속 하나가 부서져 나갔다. 기관사도 승객도 없었던 터라, 나는 그 어려운 수선을 혼자 감당해 볼 작정이었다.

나로서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였다. 가진 것이라고는 겨우 일주일 동안 마실 물밖에 없었다.


첫날 저녁, 나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사막 위에 누워 잠이 들었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 뗏목을 타고 흘러가는 난파선의 뱃사람보다도 나는 훨씬 더 외로운 처지였다. 그러니 해 뜰 무렵 이상한 작은 목소리가 나를 불러 깨웠을 때 나는 얼마나 놀라웠겠는가.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 양 한 마리만 그려 줘요!"


"뭐!"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벌떡 일어섰다. 나는 열심히 눈을 비비고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아주 신기한 꼬마 사람이 엄숙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그의 초상화가 있다.


이 그림은 내가 훗날 그를 모델로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내 그림이 그 모델만큼 멋이 있으려면 아직 멀었다.

그렇다고 내 잘못이 아니다. 내 나이 여섯 살 적에 나는 어른들 때문에 기가 죽어 화가라고 하는 작업에서 멀어졌고, 속이 보이는 보아뱀과 보이지 않는 보아뱀밖에는 한 번도 그림공부를 해 본 적이 없지 않은가.아뭏든 나는 놀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홀연히 나타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이 아닌가.


그런데 나의 꼬마 사람은 길을 잃은 것 같지도 않았고, 피곤이나굶주림이나 목마름에 시달려 녹초가 된 것 같지도 않았으며, 겁에질려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마침내 입을 열어 겨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넌 거기서 뭘 하고 있느냐?"


그러나 그 애는 무슨 중대한 일이나 되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같은말을 되풀이했다.


"저.....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수수께끼같은 일을 만나 너무 놀라게 되면 누구나 감히 거역하지 못하는 법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천 마일 떨어져 어른거리는 죽음을 눈 앞에 두고, 그것이 말할 수 없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와 만년필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내가 특별히 공부한 것이라고 해 보아야

지리와 역사, 산수와 문법 따위임을 생각하고 (기분이 좀 언짢아서), 이 꼬마사람에게 나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대답했다.


"괜찮아. 양 한 마리만 그려 줘."


나는 한 번도 양을 그려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그릴 수 있는 단 두 가지 그림 중에서 하나를 그에게 다시 그려 주었다.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의 그림을. 그런데 놀랍게도 그 꼬마사람은 이렇게 답하는 것이었다.


"아냐! 아냐! 난 보아뱀의 뱃속에 있는 코끼리는 싫어. 보아뱀은 아주 위험하고, 코끼리는 아주 거추장스러워. 내가 사는 데는 아주 작거든. 나는 양을 갖고 싶어. 양 한마리만 그려 줘."


그래서 나는 이 양을 그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살펴보더니


"아냐! 이건 벌써 몹시 병들었는 걸. 다른 걸로 하나 그려 줘!"


나는 다시 그렸다.


내 친구는 얌전하게 미소 짓더니, 너그럽게 말했다.


""아이참..... 이게 아니야. 이건 숫양이야. 뿔이 돋고....."


그래서 나는 다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것 역시 먼저 그림들처럼 퇴짜를 맞았다.


"이건 너무 늙었어. 나는 오래 살 수 있는 양이 있어야 해."


그때, 기관을 분해할 일이 우선 급했던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아무렇게나 쓱쓱 그린다는 게 이 그림이었다.


그리고는 던져 주며 말했다.


"이건 상자야. 네가 갖고 싶어 하는 양은 그 안에 들어 있어."


그러나 놀랍게도 이 꼬마 심판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말한 건 바로 이거야! 이 양을 먹이려면 풀이 좀 많이 있어야겠지?"


"왜?"


"내가 사는 곳은 너무 작아서....."


"그거면 충분해. 정말이야. 내가 그려 준 건 조그만 양이거든."


그는 고개를 숙여 그림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작지도 않은데..... 이것 봐! 잠이 들었어....."


나는 이렇게 해서 어린 왕자를 알게 되었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린 왕자는 내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도 내 질문은 전혀 귀담아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다 우연히 흘러 나온 말을 듣고, 나는 차츰차츰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가령, 그가 처음으로 내 비행기(내 비행기는 그리지 않겠다. 내게는 너무 복잡한 그림이라서)를 보았을 때, 나한테 이렇게 물었다.


"이 물건은 뭐야?"


"그건 물건이 아니야. 그건 날아다니는 거야. 비행기야. 내 비행기."


나는 내가 날아다닌다는 걸 그 애가 알아듣도록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뭐라구! 아저씨가 하늘에서 떨어졌어!"


"그래!" 나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야! 그것 참 신기하다....."


그리곤 어린 왕자가 아주 유쾌한 듯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나는 몹시 화가 났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 불행을 끔찍한 것으로 생각해 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덧붙여 말했다.


"그럼 아저씨도 하늘에서 왔구나! 어느 별에서 왔어?"


나는 그 말을 듣자, 수수께끼같은 그의 존재에 한 줄기 희미한 빛처럼 무언가 실마리가 잡히는 것같아 다구쳐 물어 보았다.


"그럼 넌 다른 별에서 왔니?"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비행기를 바라보며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저걸 타고서야 그렇게 먼곳에서 올 수는 없었겠다....."


그리고 그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그는 호주머니에서 양을 꺼내 들고 그 보물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그 알듯말듯 한 '다른 별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 호기심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래서 나는 좀 더 깊이 알아 보려고 무척 애를 썼다.


"넌 어디서 왔니? 이 꼬마 사람아. '네가 사는 곳'이란 데가 도대체 어디니? 내 양을 어디로 데려 가려는 거니?"


그는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잘됐어. 아저씨가 준 상자는 밤이면 양의 집으로 쓸 수도 있겠는데."


"물론이지. 그리고 네가 얌전히 굴면 낮에 양을 묶어 둘 수 있는 고삐도 하나 줄께. 말뚝도 주고."


내 제안이 어린 왕자의 마음을 거슬린 것 같았다.


"묶어 둬? 참 괴상한 생각이다!"


"그렇지만 묶어 두지 않으면 아무 데나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을거야....."


그 말에 내 친구는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가면 어디로 가겠어요!"


"어디든지, 제 앞으로 곧장....."


그때 어린 왕자가 엄숙하게 말했다.


"괜찮아. 내가 사는 곳은 아주 작은 곳이야."


그리고는 어쩐지 좀 쓸쓸한 목소리로 그는 덧붙였다.


"앞으로 곧장 가 봐야 그렇게 멀리 갈 수도 없어....."


나는 이렇게 해서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린 왕자가 태어난 별이 겨우 집 한 채보다도 클까 말까 하다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지구,목성,화성,금성, 이렇게 이름이 붙은 큰 떠돌이 별들 외에도 아주 작아서 망원경으로도 잘 보이지 않는 다른 별들이 수백 개도 더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천문학자가 이런 별을 하나 발견하면 이름 대신 번호를 붙여 준다. 이를테면, "소혹성 3251호"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나는 어린 왕자가 소행성 B612호에서 왔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소행성은 1909년 터어키의 어느 천문학자가 단 한 번 망원경으로 보았을 뿐이다.


그때 이 천문학자는 국제 천문학회에서 자기가 발견한 것에 대해 어마어마한 발표를 했다. 그러나 그가 입은 옷 때문에 누구 하나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이 없었다.


어른들은 언제나 이렇다.


소행성 B612호의 명성을 위해서는 참으로 다행스럽게 터어키의 한 독재자가 그의 백성들에게 유럽식으로 옷을 입으라고 명령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고 했다. 그 천문학자는 1920년에   아주 맵시 있는 옷을 입고 발표를 다시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두들 그의 말을 믿었다.


내가 소행성 B612호에 대해 이런 세세한 이야기를 늘어 놓고, 그 번호까지 분명히 말해 두는 것은 다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어른들에게 말하면, 어른들은 도무지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어보지 않는다. "그 애의 목소리는 어떠냐? 그 애도 나비를 채집하느냐?" 절대로 이렇게 묻는 법이 없다."그 앤 나이가 몇이지? 형제들은 몇이나 되고? 몸무게는 얼마지? 그 애 아버진 얼마나 버니?" 항상 이렇게 묻는다.


만일 여러분들이 "나는 아주 아름다운 장미빛 벽돌집을 보았어요. 창문에 제라늄이 있고,지붕 위에 비둘기가 있고....."

이런 식으로 어른들에게 말한다면, 어른들은 그 집을 상상해 내지 못할 것이다.

그들에겐 "나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 라고 말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그들은 소릴 친다.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래서, "어린 왕자가 매혹적이었고, 웃었고, 양 한 마리를 가지고 싶어했다는 것이 그가 이 세상에 있었던 증거야. 어떤 사람이 양을 갖고 싶어한다면 그건 그가 이 세상에 있는 증거야" 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어깨를 으쓱 하고는 여러분을 어린아이 취급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떠나온 별은 소혹성 B612호입니다"라고 말하면 수긍을 하고 더 이상 질문을 해대며 귀찮게 굴지도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언제나 이렇다. 그들을 탓해서는 안된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을 아주 너그럽게 대해야 한다.


그러나 삶을 이해하고 있는 우리들은 숫자 같은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동화 같은 식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옛날에 저보다 좀더 클까 말까 한 별에서 살고 있는 어린왕자가 있었는데, 그는 친구가 갖고 싶어서....."


삶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식의 이야기가 훨씬 더 진실하게 보였으리라.


그러나 내가 그렇게 이야기 하지 못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내 책을 가볍게 읽어 버리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추억을 이야기 하려니 온갖 슬픈 생각이 다 떠오른다. 내 친구가 양을 가지고 떠난 지도 어언 육 년이 되었다. 내가 여기에다 그 모습을 그리려고 애를 쓰는 것은 그애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친구를 잊어 버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니까. 누구나 다 친구를 가져보는 것은 아니다. 그를 잊는다면 나는 숫자밖에 흥미가 없는 어른들과 같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그림물감 한 상자와 연필을 산 것은 이런 까닭에서였다. 내 나이 여섯 살 적에 속이 보이는 보아뱀과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뱀의 그림 외에는 전혀 손대 보지 못한 내가 이 나이에 다시 그림을 시작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나는 물론 힘이 닿는  한 그의 모습과 가장 비슷한 초상화를 그리려고 노력하겠다. 그러나 성공할 수 있을는지 정말 자신이 없다. 어떤 그림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어떤 그림은 아주 다른 것이 돼 버린다. 키를 어림잡는 데도 좀 서투르다.여기서는 어린왕자가 너무 크고 저기서는 너무 작다. 그의 옷 색깔에 대해서 역시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되건 안 되건 이럭저럭 더듬어 본다. 아주 중요한 부분에 가서 잘못을 저지를 것만 같다. 그래도 나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내 친구는 설명을 해 주는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자기와 비슷하리라고 생각했던가 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상자를 통하여 그 속에 있는 양을 볼 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조금씩 어른들처럼 되어 버린 것 같다. 아마 늙어 버렸나 보다.


나는 별이나 출발이나 여행에 대해 날마다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어린 왕자가 무심결에 하는 말들을 통해 서서히 그렇게 된것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 바오밥나무의 비극을 알게 된 것도 그렇게 해서였다.


이번에도 역시 양의 덕택이었다. 심각한 의문이 생긴듯이 어린 왕자가 느닷없이 물었다. "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는다는게 정말이지?"


"그럼, 정말이지."


"아! 그럼 잘 됐네!"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는다는게 왜 그리 중요한 사실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말을 이었다.


"그럼 바오밥나무도 먹겠지?"


나는 어린 왕자에게 바오밥나무는 작은 나무가 아니라 성당만큼이나 커다란 나무이고, 한 떼의 코끼리를 데려간다 해도 바오밥나무 한 그루도 다 먹어치우지 못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한 떼의 코끼리라는 말에 어린 왕자는 웃으며,


"코끼리들을 포개 놓아야겠네......"하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현명하게도 이런 말을했다.


"바오밥나무도 커다랗게 자라기 전에는 작은 나무였지?"


"물론이지! 그런데 왜 양이 바오밥나무를 먹어야 된다는 거지?"


어린 왕자는 "아이 참!"하며, 그것은 자명한 이치라는 듯이 대꾸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그 수수께끼를 푸느라고 한참 머리를 짜내야만 했다.어린 왕자가 사는 별에는 다른 모든 별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풀과 나쁜 풀이 있었다.


따라서 좋은 풀들의 좋은 씨들과 나쁜 풀들의 나쁜 씨들이 있었다. 그러나 씨앗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들은 땅 속 깊이 숨어 잠들어 있다가 그중 하나가 갑작스레 잠에서 깨어나고 싶어진다. 그러면 그것은 기지개를 켜고, 태양을 향해 처음엔 머뭇거리면서 그 아름답고 연약한 새싹을 내민다. 그것이 무우나 장미의 싹이면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된다.


하지만 나쁜 식물의 싹이면 눈에 띄는 대로 뽑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어린 왕자의 별에는 무서운 씨앗들이 있었다...... 바오밥나무의 씨앗이었다. 그 별의 땅에는 바오밥나무 씨앗투성이였다. 그런데 바오밥나무는 자칫 늦게 손을 쓰면 그땐 정말 처치할 수 없게 된다. 별을 온통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다. 뿌리로 별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게다가 별이 너무 작은데 바오밥나무가 너무 많으면 별이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 어린 왕자, 너의 쓸쓸하고 단순한 생활을 이렇게 해서 나는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었지. 너에게는 오랫동안 심심풀이라고는 해질녁의 풍경을 바라보는 감미로움밖에 없었지. 나흘째 되는 날 아침, 나는 그 새로운 사실을 알았지. 네가 내게 이렇게 말했거든.


"나는 해질 무렵을 좋아해. 해지는 걸 보러가......""


"기다려야지......".


"뭘 기다리지?"


"해가 지길 기다려야지."


너는 처음에는 몹시 놀라는 기색이었으나 이내 자기 말이 우스운 듯 웃음을 터뜨렸지. 그리고는 나에게 말했지.


"아직도 집에 있는 것만 같거든!!"


실제로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모두들 알고 있듯이 미국에서 정오일때 프랑스에서는 해가 진다.


프랑스로 단숨에 달려갈수만 있다면 해가 지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프랑스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너의 조그만 별에서는 의자를 몇 발짝 뒤로 물려 놓기만 하면 되었지.


그래서 언제나 원할 때면 너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었지......


"어느 날 나는 해가 지는 걸 마흔 세 번이나 보았어!"


그리고는 잠시 후 너는 다시 말했지.


"몹시 슬플 때에는 해지는 모습이 보고 싶어......"


"그럼 마흔 세 번이나 해 지는 걸 구경하던 날, 너는 그렇게도 슬펐었니?"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이 없었다.


다섯째 되는 날, 역시 양의 덕분으로 어린 왕자의 생활의 비밀을 한 가지 알게 되었다. 그가 불쑥, 오랫동안 혼자 어떤 문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던 끝에 튀어나온 말인 듯 나에게 물었다.


"양은 작은 나무를 먹으니까 꽃도 먹겠지?"


"양은 닥치는 대로 먹지."


"가시가 있는 꽃도?"


"그럼. 가시가 있는 꽃도 먹고 말고"


"그럼 가시는 어디에 소용되지?"


나 역시 그것은 알지 못했다. 나는 그때 내 모터의 볼트가 너무 꼭 죄어 있어 그것을 빼내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비행기의 고장이 매우 중대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먹을 물이 바닥이 드러나고 있어 최악의 상태를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에 나는 무척 불안했던 것이다.


"가시는 무엇에 소용되는 거지?"


어린 왕자는 한 번 질문을 했을 때는, 결코 포기한 적이 없었다. 나는 볼트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으므로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대답해 버렸다.


"가시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어. 꽃들이 공연히 심술을 부리는 거지!"


"그래!"


그러나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어린 왕자는 원망스럽다는 듯 나에게 이렇게 톡 쏘아 붙였다.


"그건 거짓말이야! 꽃들은 연약해. 순진하고, 꽃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거야. 가시가 있으면 무서운 존재가 되는 줄로 믿는 거야......"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이 볼트가 끝내 말썽을 부리면 망치로 두들려 튀어나오게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또다시 내 생각을 방해했다.


"그럼 아저씨 생각으로는 꽃들이......"


"그만해 둬! 아무래도 좋아! 난 되는 대로 대답했을 뿐이야. 나에겐 지금 중대한 일이 있어!"


그는 어리둥절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중대한 일이라고?"


망치를 손에 들고 손가락은 시커멓게 기름투성이가 되어 그에게는 매우 흉측스럽게 보이는 물체 위로 몸을 기울이고 있는 나의 모습을 그는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어른들처럼 말하고 있잖아!"


그 말에 나는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런데도 그는 사정없이 말을 이어갔다.


"아저씨는 모든 걸 혼동하고 있어...... 모든걸 혼동하고 있다구!"


그는 정말로 화가나 있었다. 온통 금빛인 그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씨뻘건 얼굴의 신사가 살고 있는 별을 나는 알고 있어. 그는 꽃향기라고는 맡아 본 적이 없어. 별을 바라본 적도 없고. 어느 누구를 사랑해 본 일도 없고. 오로지 계산만 하면서 살아왔어. 그래서 하루종일 아저씨처럼 <나는 중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 중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라고 되뇌고 있고 그래서 교만으로 가득 차 있어. 하지만 그는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지!"


"뭐라고?"


"버섯이라니까!"


어린 왕자는 이제 분노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수백만 년 전부터 꽃들은 가시를 만들고 있어. 양도 수백만년 전부터 꽃을 먹어 왔고. 그런데도 그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를 왜 만들어 내는지 알려는건 중요한게 아니라는 거지! 그건 붉은 얼굴의 신사가 하는 계산보다 더 중요한 건 못 된다는 거지! 그래서 이 세상 아무데도 없고 오직 나의 별에만 있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한 송이 꽃을 내가 알고 있고, 작은 양이 어느날 아침 무심코 그걸 먹어 버릴 수도 있다는건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거지!"


어린왕자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을 이었다.


"수백만 개의 별들 중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 그는 속으로 <내 꽃이 저기 어딘가에 있겠지......>하고 생각할 수 있거든. 하지만 양이 그 꽃을 먹는다면 그에게는 갑자기 모든 별들이 사라져 버리게 되는거나 마찬가지야! 그런데도 그게 중요하지 않단 말야?"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밤이 내린 뒤였다. 나는 손에서 연장을 놓아버렸다. 망치도 볼트도 목마름도 죽음도 모두 우습게 생각되었다. 어떤 별, 어떤 떠돌이별 위에 나의 별, 이 지구 위에 위로해 주어야 할 한 어린 왕자가 있었던 것이였다. 나는 두팔로 껴안았다. 그를 부드럽게 흔들면서 나는 말했다.


"네가 사랑하는 꽃은 위험에 처해 있지 않아...... 너의 양에게 굴레를 그려 줄께...... 그리고......"


더이상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내 자신이 무척 서툴게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그를 감동시키고 그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눈물의 나라는 그처럼 신비로운 것이다.


나는 곧 그 꽃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왕자의 별에는 전부터 꽃잎이 한 겹인 아주 소박한 꽃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자리를 거의 차지하지 않았고 아무도 귀찮게 굴지 않았다. 어느날 아침 풀 속에 나타났다가는 저녁이면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 꽃은 어딘지 모를 곳에서 날아온 씨앗으로부터 싹이 텄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다른 싹들과 닮지 않은 그 싹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새로운 종류의 바보밥나무인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나무는 곧 성장을 멈추고 꽃을 피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꽃망울이 맺히는 것을 지켜보고있던 어린 왕자는 이제 곧 그 꽃에서 어떤 기적 같은것이 나타나리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꽃은 그 연녹색 방 속에 숨어 언제까지고 아름다워질 준비만 하고 있었다. 꽃은 세심하게 빛깔을 고르고 있었다. 천천히 옷을 입고 꽃잎을 하나씩 둘씩 다듬고 있었다. 그 꽃은 개양귀비꽃처럼 구겨진 모습을 밖으로 나타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름다움이 최고로 빛을 발할 때에야 비로소 나타나고 싶어했다. 아! 정말, 아주 애교스러운 꽃이었다. 그의 신비로운 몸단장은 그래서 몇일이고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어느날 아침, 해가 막 떠오르는 시각에, 그 꽃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처럼 공들여 몸치장을 한 그 꽃은 하품을 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아! 이제 막 잠이 깼답니다...... 용서하세요...... 제 머리가 온통 헝클어져 있네요......"


어린 왕자는 그때 감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참 아름다우시군요!"


"그렇죠? 그리고 나 해와 같은 시간에 태어났답니다......"


어린 왕자는 그 꽃이 그다지 겸손하지 않다는 점을 알아챘다. 하지만 그 꽃은 너무도 감동적이 아닌가!"


"아침식사 시간이군요. 제 생각을 해주실 수 있으실는지요."


잠시후 그 꽃이 다시 말했다. 그랫 어린왕자는 신선한 물이 담긴 물뿌리개를 찾아 그 꽃에 뿌려 주었다.


이렇게 그 꽃은 태어나자마자 심술궂은 허영심으로 그를 괴롭혔다. 어느날은 자기가 가진 네 개의 가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호랑이들이 발톱을 세우고 덤벼들어도 끄떡없어요."


"우리 별엔 호랑이들은 없어요. 그리고 호랑이들은 풀을 먹지도 않고요." 라고 어린 왕자는 항의했다.


"저는 풀이 아니예요." 그 꽃이 살며시 대답했다.


"용서해 줘요......"


"난 호랑이는 조금도 무섭지 않지만 바람은 질색이랍니다. 바람막이를 가지고 있으세요?"


'바람은 질색이라...... 식물로써는 안된 일이군. 이 꽃은 아주 까다로운 식물이군' 하고 어린 왕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녁에는 나에게 유리 덮개를 씌워주세요. 당신이 살고 있는 아곳은 매우 춥군요. 설비가 좋지 않고요. 내가 살던 곳은......"


그러나 꽃은 말을 잊지 못했다. 그 꽃은 씨앗의 형태로 온 것이었다. 그러니 다른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게 있을리가 없었다. 그처럼 빤한 거짓말을 하려다 들킨게 부끄러워진 그 꽃은 어린 왕자의 잘못을 드러내기 위해서 기침을 두어번 했다.


"바람막이 있으시냐고 했잖아요?"


"찾아보려는 참이었는데 당신이 말을 계속 했잖아요!"


그러자 그 꽃은 그래도 어린 왕자에게 가책을 느끼게 하려고 더 심하게 기침을 했다.


그리하여 어린 왕자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호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말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몹시 불행해졌다.


어느날 그는 속사정을 털어 놓았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했어. 꽃들의 말에 절대로 귀를 기울이면 안돼. 바라보고 향기를 맡기만 해야 해. 내 꽃은 내 별을 향기로 뒤덮었어.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즐길줄 몰랐어. 그 발톱 이야기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실은 측은해 했어야 옳았던거야......"


그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이해할 줄 몰랐어. 그 꽃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했어. 그 꽃은 나에게 향기를 풍겨주고 내 마음을 밝게 해주었어. 결코 도망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그 가련한 거짓말 뒤에는 애정이 숨어 있다는 걸 눈치챘어야 하는건데 그랬어. 꽃들은 그처럼 모순된 존재들이거든! 하지만 난 너무 어려서 그를 사랑할 줄을 몰랐던거야."


나는 어린 왕자가 철새들의 이동을 이용하여 그의 별을 떠났으리라 생각한다. 떠나는 날 아침 그는 자기의 별을 깨끗이 정돈해 놓았다. 불을 뿜은 화산들을 정성들여 소재했다. 그에게는 불을 뿜는 화산이 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아침밥을 데우는 데 아주 편리했다. 불이 꺼져 있는 화산도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야." 그는 그래서 불 꺼진 화산도 똑같이 소재했다. 화산들은 청소가 잘 되어 있을때는 부드럽게, 규칙적으로 폭발하지 않고 타오른다. 화산의 폭발은 벽난로의 불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물론 지구위에 사는 우리들은 너무 작아 화산을 청소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화산폭발 때문에 자주 곤란한 일을 겪게 되는 것이다.


어린 왕자는 좀 서글픈 심정으로 바오밥나무의 마지막 싹들도 뽑아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치니숙한 그 모든 일들이 그날 아침에는 유난히 다정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꽃에 마지막으로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워주려는 순간 그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잘 있어." 그는 꽃에게 말했다.


그러나 꽃은 대답하지 않았다.


"잘 있어." 그가 되풀이했다.


꽃은 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감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어리석었어. 용서해 줘. 행복해지도록 노력하길 바래." 이윽고 꽃이 말했다.


비난조의 말을 들을 수 없게 된것이 어린 왕자는 놀라웠다. 그는 유리 덮개를 손에 든 채 어쩔줄 모르고 멍하니 서 있었다. 꽃의 그 조용한 다정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난 널 좋아해. 넌 그걸 전혀 몰랐지. 내 잘못이었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었어. 부디 행복해...... 유리 덮개는 내버려둬. 그런건 이제 필요없어."


"하지만 바람이 불면......"


"내 감기가 그리 대단한 건 아냐...... 밤의 서늘한 공기는 내게 더 좋을거야. 나는 꽃이니까."


"하지만 짐승이......"


"나비를 알고 싶으면 두세 마리의 쐐기벌레는 견뎌야지. 나비는 무척 아름다운 모양이니까. 나비가 아니라면 누가 나를 찾아주겠어? 너는 멀리에 가 있겠지. 커다란 짐승들은 두렵지 않아. 손톱이 있으니까."


그러면서 꽃은 천진난만하게 네개의 가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게 우물쭈물하고 있지마. 신경질 나. 떠나기로 결심했으니. 어서 가."


꽃은 울고있는 자기 모습을 어린 왕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토록 자존심 강한 꽃이었다......


 그는 소행성 325호, 326호, 327호, 328호, 329호, 330호와 이웃해 있었다. 그래서 일거리도 구하고 견문도 넓힐 생각으로 그 별들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첫번째 별에는 왕이 살고 있었다. 그 왕은 주홍빛 천과 흰 담비 모피로 된 옷을 입고 매우 검소하면서도 위엄있는 옥좌에 앉아있었다.


"아! 신하가 한 명 왔구나!" 어린 왕자가 오는 것을 보자 왕이 큰 소리로 외쳤다.


어린 왕자는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나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나를 알아볼까?"


왕에게는 세상이 아주 간단하다는 것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왕에겐 모든 사람이 다 신하인 것이다.


"너를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가까이 다가오라." 한 사람의 왕 노릇을 하게 된 것이 몹시 자랑스러워진 왕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앉을 자리를 찾았으나 그 별은 흰 담비 모피의 그 호화스러운 망토로 온통 다 뒤덮여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서 있었다. 그리고 피곤했으므로 하품을 했다.


"왕의 면전에서 하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니라. 하품을 금지하노라." 왕이 말했다.


"하품을 참을수가 없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해서 잠을 자지 못했거든요......" 어리둥절해진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렇거든 네게 명하노니 하품을 하도록하라. 하품하는 걸 본지도 여러 해가 되었구나. 하품하는 모습은 짐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니라. 자! 또 하품을 하라. 명령이니라." 왕이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겁이나서 하품이 나오지 않는군요......" 어린 왕자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어흠! 어흠! 그렇다면 짐이......짐이 명하노니 어떤 때는 하품을 하고 또 어떤 때는 ......" 하고 왕이 말했다.


그는 뭐라고 중얼중얼했다. 화가 난 기색이었다.


왜냐하면 그 왕은 자신의 권위가 존중되기를 무엇보다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복종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절대 군주였다. 하지만 매우 선량했으므로 사리에 맞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만약에 짐이 어떤 장군더러 물새로 변하라고 명령했는데 장군이 이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면 그건 그 장군의 잘못이 아니라 그건 짐의 잘못이니라." 라고 그는 평상시에 늘 말하곤 했다.


"앉아도 좋을까요?" 어린 왕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게 앉기를 명하노라." 흰 담비 모피로 된 망토 한 자락을 위엄있게 걷어올리며 왕이 대답했다.


그러나 어린 왕자는 의아해 하고 있었다. 별은 아주 조그마했다. 왕은 무엇을 다스린담?


"임금님, 한가지 여쭈어 봐도 좋을까요?"


"네게 명하노니, 질문을 하라." 왕은 어린왕자에게 서둘러 말했다.


"임금님...... 임금님은 무엇을 다스리고 계신지요?"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퍽이나 간단이 왕이 대답했다.


"모든 것을요?"


왕은 신중한 몸짓으로 그의 별과 다른 별들, 그리고 떠돌이별들을 가리켰다.


"그 모든 것을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 왕이 대답했다.


그는 절대 군주였을 뿐 아니라 온 우주의 군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럼 저 별들도 임금님께 복종하나요?"


"물론이니라. 즉각 복종하노라. 규율을 거역하는 것을 짐은 용서하지 아니하느니라." 왕이 말했다.


그러한 굉장한 권력에 어린 왕자는 경탄했다. 그도, 그런 권능을 가질 수 있다면 의자를 뒤로 물려 놓지 않고서도 하루에 마흔네번 아니라, 일흔두번, 아니 백번, 이백번 해지는 것을 볼 수 있을게 아닌가! 그래서 버리고 온 그의 작은 별에 대한 추억때문에 조금 슬퍼진 어린 왕자는 용기를 내어 왕에게 부탁을 드려 보았다.


"저는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저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요...... 해가 지도록 명령해 주세요......"


"짐이 어떤 장군에게 나비처럼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닐것을 명령하거나 비극 작품을 한 편 쓰라고 명령하거나 또는 물새로 변하도록 명령했는데 그 장군이 그 명령을 바고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가 잘못일까, 짐의 잘못일까?"


"임금님의 잘못이지요." 어린 왕자가 자신있게 말했다.


"옳다. 누구에게는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해야 하는 법이니라. 권위는 무엇보다도 이성에 근거를 두어야 하느니라. 만일 네가 너의 백성에게 바다에 몸을 던지라고 명령한다면 그들은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내가 복종을 요구할 권한을 갖는 것은 나의 명령들이 이치에 맞는 까닭이다." 왕이 말을 계속했다.


"그럼 제가 해지는 것을 보게 해달하고 한 것은요?" 한번 한 질문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 어린 왕자가 일깨웠다.


"해가 지는 것을 보게 해 주겠노라. 짐이 요구하겠노라. 그러나 내 통치 기술에 따라 조건이 갖추어지길 기다려야하느니라."


"언제 그렇게 되나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으흠. 으흠! 오늘 저녁...... 오늘 저녁 일곱시 사십분이니라! 짐의 명령이 얼마나 잘 이행되는지 너는 보게 될 것이다." 왕이 대답했다.


어린 왕자는 하품을 했다. 해지는 것을 못 보게 된것이 섭섭했다. 그는 어느새 조금 실증이 나 있었다.


"저는 이제 여기서 할 일이 없군요. 다시 떠나가 보겠습니다!"


"떠나지 말라. 떠나지 말라. 너를 대신으로 삼겠노라!" 신하가 한 사람 있게 된 것이 몹시 자랑스러운 왕이 대답했다.


"무슨 대신이요?"


"저...... 사법대신이니라!"


"하지만 재판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요!"


"그건 모를 노릇이지. 짐은 아직 짐의 왕국을 순시해 보지 않았느니라. 짐은 매우 연로한데, 사륜마차를 둘 자리도 없고, 걸어 다니자니 피곤해지거든." 왕이 말했다.


"아! 제가 벌써 다 보았어요." 허리를 굽혀 별의 저쪽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어린 왕자가 말했다. "저쪽에도 아무도 없는데요......"


"그럼 네 자신을 심판하라.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니라.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법이거든. 네가 너 스스로를 훌륭히 심판할 수 있다면 그건 네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인 까닭이니라." 왕이 대답했다.


"예, 저는 어디서든 저를 심판할 수 있어요. 굳이 여기서 살 필요는 없습니다." 어린 왕자가 말했다.


"으흠, 으흠! 내 별 어딘가에 늙은 쥐 한마리가 있는 줄로 알고 있다. 밤이면 그 소리가 들리느니라. 그 늙은 쥐를 심판하거라. 때때로 그를 사형에 처하거라. 그러면 그의 생명이 너의 심판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매번 그에게 특사를 내려 그를 아끼도록 하라. 단 한 마리밖에 없는 까닭이니라." 왕이 대답했다.


"저는 사형선고를 내리는 건 싫습니다. 아무래도 가야겠습니다." 어린 왕자가 대답했다.


"가지마라." 왕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떠날 준비를 끝마쳤지만 늙은 왕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임금님의 명령이 준수되길 원하신다면 제게 이치에 맞는 명령을 내려 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를테면 일분내로 떠나도록 제게 명령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지금 조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왕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으므로 어린 왕자는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길을 떠났다.


"너를 내 대사로 명하노라." 왕이 황급히 외쳤다.


그는 매우 위엄에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군' 하며 어린 왕자는 여행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두번째 별에는 혀영심에 빠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아! 저기 나를 찬양하는 사람이 찾아오는군!" 어린 왕자를 보자마자 허영심 많은 사람이 멀리서부터 외쳤다.


허영심에 가득찬 사람들에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찬양해 주는 사람들은 것이다.


"안녕하세요. 야릇한 모자를 쓰고 계시군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답례하기 위해서지. 나에게 사람들이 환호를 보낼 때 답례하기 위해서야. 그런데 불행히도 이리로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허영심 많은 사람이 대답했다.


"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어린 왕자가 말했다.


"두 손을 마주 쳐봐요." 허영심 많은 사람이 가르쳐 주었다.


어린 왕자는 두 손을 마주쳤다. 허영심 많은 사람은 모자를 들어올리며 점잖게 답례했다.


'왕을 방문할 때보다 더 재미있군' 어린 왕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는 다시 두 손을 마주 두드렸다. 허영심 많은 사람이 모자를 들어올리며 다시 답례를 했다.


오 분쯤 되풀이하고 나니 어린 왕자는 그 장난이 재미없어졌다.


"모자를 떨어뜨리려면 어떻게 해야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러나 허영심 많은 사람은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허영심 많은 사람들에게는 오로지 찬양의 말만이 들리는 법이다.


"너는 정말로 나를 찬양하지?" 그가 어린 왕자에게 물었다.


"찬양하는게 뭐지?"


"찬양한다는건 내가 이 별에서 가장 잘생겼고, 가장 옷을 잘입고, 가장 부자이고, 가장 똑똑하다고 인정해 주는 거지."


"하지만 이별엔 아저씨 혼자밖에 없잖아!"


"나를 기쁘게 해줘. 그렇게 나를 찬양해 줘."


"아저씨를 찬양해. 그런데 그게 아저씨에게 무슨 상관이 있지?' 어깨를 조금 들썩하면서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그 별을 떠났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하군' 어린 왕자는 여행을 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다음 별에는 술꾼이 살고 있었다. 그 별에는 그저 잠시 들렀을 뿐이지만 어린 왕자를 깊은 우울에 빠뜨렸다.


"무얼 하고 있어요?" 빈 병 한무더기와 술이 가득차 있는 병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말없이 앉아 있는 술꾼을 보고 어린 왕자가 말했다.


"술을 마시지." 침울한 표정으로 술꾼이 대꾸했다.


"왜 술을 마셔요?" 어린 왕자가 그에게 물었다.


"잊기 위해서지." 술꾼이 대답했다.


"무엇을 잊기 위해서요?" 측은한 생각이 든 어린 왕자가 물었다.


"부끄럽다는걸 잊기 위해서지." 머리를 숙이며 술꾼이 대답했다.


"뭐가 부끄럽다는 거지요?" 그를 돕고 싶은 어린 왕자가 캐물었다.


"술을 마시는게 부끄러워!" 이렇게 말하고 술꾼은 침묵을 지켰다.


그래서 난처해진 어린 왕자는 길을 떠나 버렸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하군' 하고 어린 왕자는 여행을 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네번째 별은 장사꾼의 별이었다. 그 사람은 어찌나 바른지 어린 왕자가 찾아왔는데도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담배불이 꺼졌군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셋에다 둘을 더하면 다섯, 다섯에 일곱을 더하면 열 둘, 열 둘에 셋을 더하면 열 다섯, 안녕. 열 다섯에 일곱을 더하면 스물 둘, 스물 둘에 여섯을 더하면 스물 여덟, 다시 담배불 붙일 시간이 없어. 스물 여섯에 다섯을 더하면 서른 하나라. 휴우! 그러니까 오억 일백 육십 이만 이천 칠백 삼십 일이 되는구나."


"뭐가 오억이야?"


"응? 너 아직도 거기 있니? 저, 오억 일백만...... 도무지 틈을 낼 겨를이 없구나...... 너무 바빠서. 나는 중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 허튼 소리 할 시간이 없어! 둘에다 다섯을 더하면 일곱......"


"뭐가 오억인데?" 한번 한 질문은 절대로 포기해 본 적이 없는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다.


장사꾼은 고개를 들었다.


"이 별에서 오십 사년 동안 살고 있는데 내가 방해를 받은 적은 딱 세번뿐이야. 첫번째는 이십 이년 전이었는데, 어디서 왔는지 모를 웬 풍뎅이가 날 방해했어. 그게 어찌나 요란한 소리를 내는지 계산이 네군데나 틀렸었지. 두번째는 십이리년 전이었는데, 신경통 때문이었어. 난 운동부족이거든. 산보할 시간이 없으니까. 난 중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그래. 세번째는 바로 지금이야! 가만있자, 오억 일백만이었겠다......"


"뭐가 오억 일백만 이라는 거지?"


장사꾼은 조용히 일하기는 글렀다는 걸 깨달았다.


"때때로 하늘에 보이는 그 작은 것들 말이야."


"파리?"


"아니, 반짝거리는 작은 것들 말이야."


"꿀벌?"


"아니, 게으름배이이들을 멍청이 공상에 잠기게 만드는 금빛나는 작은 것들 말이야. 헌데 난 중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거든! 공상에 잠길 시간이 없어."


"아! 별 말이군?"


"그래 맞아, 별이야."


"오억의 별들을 가지고 뭘 하는 건데?"


"오억 일백 육십 이만 이천 칠백 삼십 일개야. 나는 중대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 정확한 사람이지."


"그런데 별을 가지고 뭘 하는 건데?"


"뭘 하느냐고?"


"응."


"아무것도 안해.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는거지."


"별들을 소유하고 있다고?"


"그래."


"하지만 내가 전에 본 어떤 왕은......"


"왕은 소유하지 않아. 그들은 다스리지. 그건 아주 다른 얘기야."


"그럼 그 별들을 소유하는게 아저씨에게 무슨 소용이 되는데?"


"부자가 되게 해주지."


"부자가 되는게 무슨 소용이 있어?"


"다른 별들이 발견되면 그걸 사는데 소용되지."


'이 사람도 그 술꾼처럼 말하고 있군' 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그래도 질문은 계속했다.


"별들은 어떻게 소유한담?"


"별들이 누구꺼지?" 장사꾼은 두털대며 물었다.


"모르겠는걸. 그 누구의 것도 아니겠지."


"그러니까 내 것이지. 내가 제일 먼저 그 생각을 했으니까."


"그러면 아저씨 것이 되는 거야?"


"물론이지. 임자 없는 다이아몬드는 그걸 발견한 사람의 소유가 되는 거지. 임자가 없는 섬을 네가 발견하면 그건 네 소유가 되는 거고. 네가 어떤 기막힌 생각을 제일 먼저 해냈으면 특허를 맡아야해. 그럼 그것이 네 소유가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별들을 소유하고 있는거야. 나보다 먼저 그것들을 소유할 생각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


"하긴 그렇군. 그렇지만 아저씨는 별들을 가지고 뭘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것들을 관리하지. 세어보고 또 세어보고 하지. 그건 힘든 일이야. 하지만 나는 진지한 사람이거든!"


어린 왕자는 그래도 흡족해 하지 않았다.


"나는 말이야. 머플러를 소유하고 있을 때는 그것을 목에 두르고 다닐 수가 있어. 또 꽃을 소유하고 있을 때는 그 꽃을 꺽어 가지고 다닐 수 있고. 하지만 아저씨는 별들을 꺽을 수가 없잖아!"


"그럴 수는 없지. 하지만 그것들을 은행에 맡길 수 있지."


"그게 무슨 말이야?"


"조그만 종이 조각에다 내 별들의 숫자를 적어 그것을 서랍에 넣고 잠근단 말이야."


"그리고 그뿐이야?"


"그뿐이지"


'그거 재미있는데, 제법 시적이고. 하지만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군.' 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어린 왕자는 중요한 일에 대해서 어른들과 매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말이야 꽃을 한 송이 소유하고 있는데 매일 물을 줘. 세 개의 화산도 소유하고 있어서 주일마다 그을음을 청소해 주고는하지. 불이 꺼진 화산도 청소해 주니까 세 개란 말이야.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거든. 내가 그들을 소유하는건 내 화산들에게나 꽃들에게 유익한 일이야. 하지만 아저씨는 별들에게 하나도 유익하지 않잖아......"


장사꾼은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대답할 말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떠나버렸다.


'어른들은 아주 이상야릇하군.' 하고 어린 왕자는 여행하면서 혼자 속으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다섯번째 별은 무척 흥미로운 별이었다. 그것은 모든 별들 중에서 제일 작은 별이었다. 가로등 하나와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있을 자리밖에 없었다. 하늘 한 구석, 집도 없고 사람도 살지 않는 별에서 가로등과 가로등 켜는 사람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어린 왕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인지 몰라. 그래도 왕이나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나 장사꾼, 혹은 술꾼 보다는 덜 어리석은 사람이지. 적어도 그가 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어. 가로등을 켤때는 별 하나를, 꽃 한 송이를 더 태어나게 하는 것이나 같은 거야. 그가 가로등을 끌때면 그 꽃이나 그 별을 잠들게 하는 거고. 그거 굉장히 아름다운 직업이군. 아름다우니까 정말 유익한 것이지.'


그 별에 다가가자 그는 가로등 켜는 사람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 아저씨. 왜 가로등을 지금 막 껐어?"


"안녕, 그건 명령이야." 가로등 켜는 사람이 대답했다.


"명령이 뭐야?"


"내 가로등을 끄는거지. 잘자."


그리고 그는 다시 불을 켰다.


"그런데 왜 지금 막 가로등을 다시 켰어?"


"명령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어린 왕자가 말했다.


"이해할 건 아무것도 없지. 명령은 명령이니까. 잘자." 가로등 켜는 사람이 말했다.


그리고 가로등을 껐다.


그리고 나서는 붉은 바둑판 무늬의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난 정말 고된 직업을 가졌어. 전에는 무리가 없었는데. 아침에 불을 끄고 저녁이면 다시 켰었지. 그래서 나머지 낮에는 쉬고 나머지 밤에는 잠을 잘 수 있었거든......"


"그럼 그 후 명령이 바뀌었어?"


"명령은 바뀌지 않았으니까 그게 문제지! 이 별은 해가 갈수록 빨리 돌고 있는데 명령은 바뀌지 않았단 말이야!" 가로등 켜는 사람이 말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 별이 일분마다 한 바퀴씩 돌기 때문에 단 일초도 쉴새가 없는거야. 일분마다 한번씩 껐다가 켰다가 해야 하는거지."


"그거 참 이상하네! 아저씨네 별에선 하루가 일분이라니!"


"조금도 이상할 것 없지. 우리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가 벌서 한달이 되었단다." 가로등 켜는 사람이 말했다.


"한달?"


"그래. 삼십분이니까, 삼십 일이지! 잘자."


그리고 그는 다시 가로등을 켰다.


어린 왕자는 그를 바라보았다. 명령에 그토록 충실한, 그 가로등 켜는 사람이 좋아졌다. 의자를 뒤로 물리면서 해지는 광경을 보고 싶어하던 지난 일이 생각났다. 그 친구를 도와 주고 싶었다.


"저 말이야......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그야 언제나 쉬고 싶지." 가로등 켜는 사람이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성실하면서도 또 한편 게으름부리고 싶을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왕자는 말을 계속했다.


"아저씨 별은 아주 작으니까 세 발자국만 옮겨 놓으면 한 바퀴 돌 수 있잖아. 언제나 햇빛 속에 있으려면 천천히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거야. 쉬고 싶을때면 걸어가도록 해. 그럼 하루해가 원하는 만큼 길어질 수 있을거야."


"그건 별 도움이 되지 못하겠는걸. 내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건 잠을 자는 거니까." 가로등 켜는 사람이 말했다.


"그거 유감인데." 어린 왕자가 말했다.


"유감이야. 잘자." 가로등 켜는 사람이 말했다.


그리고는 가로등을 껐다.


'저 사람은 다른 사람들, 왕이나 허영심 많은 사람이나 술꾼, 혹은 장사꾼 같은 사람들에게 멸시받을 테지. 하지만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는 사람은 저 사람뿐이야. 그건 저 사람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일에 골몰하기 때문일거야.' 더 멀리로 여행을 계속하면서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그는 섭섭해서 한숨을 내쉬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친구로 삼을 수 있었던 사람은 저 사람뿐이었는데, 그런데 그의 별은 너무 작아. 두 사람이 있을 자리가 없거든."


그가 축복받은 별을 잊지 못하는 것은 스물 네시간 동안에 1천 4백 4십번이나 해가 지기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어린 왕자가 차마 스스로에게도 고백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여섯번째 별은 먼저번 별보다 열배나 더 큰 별이었다. 그 별에는 무지하게 커다란 책을 쓰고 있는 늙은 신사 한 분이 살고 있었다.


"야! 탐험가가 하나 오는군!" 어린 왕자를 보며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어린 왕자는 책상 위에 걸터앉아 조금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벌써 몹시도 긴 여행을 했던 것이다.


"어디서 오는거냐?" 그 노인이 물었다.


"이 두꺼운 책은 뭐예요? 여기서 뭘 하시는 거지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난 지리학자란다." 노인이 말했다.


"지리학자가 뭐예요?"


"바다와 강과 도시와 산, 그리고 사막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지."


"그거 참 재미있네요. 그거야말로 직업다운 직업이로군요!" 어린 왕자는 말하고, 지리학자의 별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처럼 멋진 별을 그는 본적이 없었다.


"할아버지 별은 참 아름답군요. 넓은 바다도 있나요?"


"난 몰라." 지리학자가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산은요?" 어린 왕자는 실망했다.


"난 몰라." 지리학자가 말했다.


"그럼 도시와 강과 사막은요?"


"그것도 알 수 없다."


"할아버지는 지리학자 아녜요?"


"그렇지. 하지만 난 탐험가가 아니거든. 내겐 탐험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단다. 도시와 강과 산, 바다와 태양과 사막을 세러 다니는건 지리학자가 하는 일이 아냐. 지리학자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니까 한가로이 돌아다닐 수가 없지. 서재를 떠날 수가 없어. 서재에서 탐험가들을 만나는 거지. 그들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하여 그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거애. 탐험가의 기억중에 매우 흥미로운게 있으면 지리학자는 그 사람의 정신상태를 조사시키지."


"그건 왜요?"


"탐험가가 거짓말을 하면 지리책에 커다란 이변이 일어나게 될테니까. 탐험가가 술을 너무 마셔도 그렇지."


"그건 왜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왜냐하면 술에 잔뜩 취한 사람에겐 모든게 둘로 보이거든. 그렇게 되면 지리학자는 산 하나밖에 없는데다 산 둘을 기록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내가 아는 어떤 사람도 그럼 나쁜 탐험가가 될 수 있겠군요?"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럴수도 있겠지. 그래서 탐험가의 정신 상태가 훌륭하다고 생각될 때는 그의 발견을 조사하지."


"직접 가 보시나요?"


"아니지, 그건 너무 번잡스러우니까. 그대신 탐험가에게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거야. 가령 커다란 산을 발견했을때는 커다란 돌멩이를 가져오라고 요구하는거지."


지리학자는 갑자기 흥분했다.


"그런데 너는 멀리서 왔지! 너는 탐험가야! 너의 별이 어떤 별인지 이야기해줘!"


그러더니 지리학자는 노트를 펴고 연필을 깎았다. 탐험가의 이야기를 처음에는 연필로 적었다가 그가 증거를 가져올때까지 기다렸다가 증거를 가져오면 그제서야 잉크로 적는 것이었다.


"자, 시작해 볼까?" 지리학자가 물었다.


"글쎄요, 내 별은 별로 흥미로울게 없어요. 아주 작거든요. 화산이 셋 있어요. 둘은 불을 내뿜는 화산이고 하나는 불이 꺼진 화산이지요. 하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요."


"그래,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 지리학자가 말했다.


"제겐 꽃 한 송이도 있어요."


"꽃은 기록하지 않아." 지리학자가 말했다.


"왜요? 그게 더 예쁜데요!"


"꽃들은 일시적인 존재니까."


"일시적인 존재? 그게 뭔데요?"


"지리책은 모든 책들 중 가장 귀중한 책이야. 지리책은 유행에 뒤지는 법이 없지. 산이 위치를 바꾸는 일은 매우 드물거든. 바닷물이 비어 버리는 일도 매우 드물고. 우리는 영원한 것들을 기록하는 거야."


"하지만 불꺼진 화산들이 다시 깨어날 수도 있어요. 일시적인 존재가 뭐예요?" 한번 한 질문은 평생 포기해 본적이 없는 어린 왕자가 말을 가로막았다.


"화산이 꺼져 있든 깨어 있든 우리에게는 마찬가지야. 우리에게 중요한건 산이지. 산은 변하지 않거든."


"그런데 일시적인 존재란 뭐예요?" 한번 한 질문은 평생 포기 해 본적이 없는 어린왕자가 다시 되물었다.


"그건 멀지않아 사라져 버릴 위험에 있다는 뜻이지."


"내 꽃은 머지않은 장래에 사라져 버릴 위험에 처해 있나요?"


"물론이지."


'내 꽃은 일시적인 존재야. 세상에 대항할 무기라곤 네 개의 가시밖에 없고! 그런데 나는 그 꽃을 내 별에 혼자 내버려 두고 왔어!' 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그것은 후회스러운 느낌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용기를 냈다.


"어디를 가 보는게 좋을까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지구라는 별로 가봐. 대단히 이름 높은 별이거든......"


그래서 어린 왕자는 그의 꽃에 대해 생각하며 또 다시 길을 떠났다. 


 일곱번째 별은 그래서 지구였다.


지구는 그저 그렇고 그런 보통 별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1백 11명의 왕(물론 흑인 나라의 왕을 포함해서)과 7천명의 지리 학자와 90만명의 장사꾼, 7백 50만명의 술주정뱅이, 3억 1천 1백만명의 허영심 많은 사람들, 즉 약 20억쯤 되는 어른들이 살고 있었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여섯 대륙을 통틀어 4십 6만 2천 5백 11명이나 되는 가로등 켜는 사람들을 두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은 지구가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면 눈부시게 멋진 광경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그들이 무리지어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오페라의 발레단처럼 질서정연한 것이었다. 맨 처음은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의 차례였다. 가로등을 켜고나면 그들은 잠을 자러갔다. 그리고 나면 중국과 시베리아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이 발레 무대에 나타났다. 그들 역시 무대 뒤로 사라지면 러시아와 인도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다음번에는 아프리카와 유럽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 또 그 다음에는 남아메리카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 또 그다음에는 북아메리카의 가로등 켜는 사람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들은 무대에 나타나는 순서를 한 번도 엇갈리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무척 장엄한 광경이었다.


오직 북극의 단 하나밖에 없는 가로등 켜는 사람과 북극에 있는 그의 동료들만이 한가롭고 태평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년에 두 번 일을 했다. 

 

재치를 부리려다 보면 조금 거짓말을 하는 수가 있다. 가로등 켜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한 이야기는 아주 정직한 것은 못 된다. 지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칫하면 지구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지구 위에서 차지하는 자리란 실로 아주 작은 것이다. 지구에서 사는 20억의 사람들이 어떤 모임에서처럼 서로 좀 바작바짝 붙어 서 있는다면 세로 20마일 가로 20마일의 광장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들은 태평양의 아주 작은 섬 한 곳에 몰아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어른들은 이런 말을하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굉장히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들에게 계산을 해보라고 일러 주어야 한다. 그들은 본시 숫자를 좋아하니까. 그럼 그들은 기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 문제를 푸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쓸데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내 말을 믿지 않는가.


어린 왕자는 그래서 지구에 발을 들여놓았을때 사람이라곤 통 보이지 않는데 놀랐다. 그가 잘못해서 다른 별로 찾아온게 아닌가 겁이 나 있을때, 달빛같은 고리가 모래 속에서 음직이는 것이 보였다.


"안녕." 어린 왕자가 무턱대고 말했다.


"안녕." 뱀이 말했다.


"지금 내가 도착한 별이 무슨 별이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지구야, 아프리카지." 뱀이 대답했다.


"그래...... 그럼 지구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니?"


"여긴 사막이야. 사막에는 아무도 없어. 지구는 커다랗거든." 뱀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돌 위에 앉아 눈길을 하늘로 향했다.


"누구든 언제고 다시 자기 별을 찾아낼 수 있게 별들이 환히 불밝혀져 있는 건지도 몰라. 내 별을 바라봐. 바로 우리들 위에 있어. 그런데 어쩌면 저렇게 멀리 있지!"


"아름답구나. 여긴 왜 왔니?" 뱀이 물었다.


"난 어떤 꽃하고 골치 아픈 일이 있단다."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래!" 뱀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잠자코 있었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사막에선 조금 외롭구나......" 어린 왕자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들 가운데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뱀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한참 바라보았다.


"넌 아주 재미있게 생긴 짐승이구나. 손가락처럼 가느다랗고."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래도 난 왕의 손가락보다도 힘이 더 세단다." 뱀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미소를 지었다.


"넌 힘이 세지 못해. 발도 없고. 여행도 할 수 없잖아."


"난 배보다 더 먼 곳으로 너를 데려다 줄 수 있어." 뱀이 말했다.


그는 어린 왕자의 발뒤꿈치에 팔찌처럼 몸을 휘감더니 말했다.


"나를 건드리는 사람마다 그가 나왔던 땅으로 돌려보내 주지. 하지만 넌 순진하고 또 다른 별에서 왔으니까."


어린 왕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네가 측은해 보이는 구나. 무척이나 연약한 몸으로 이 돌맹이 투성이의 지구에 있으니. 네 별이 몹시 그리울 때면 언제고 내가 너를 도와 줄 수 있을꺼야. 난......"


"응! 아주 잘 알았어. 헌데 왜 그렇게 줄곧 수수께끼같은 말만하니?"


"난 그 모든걸 해결할 수 있어." 뱀이 말했다.


그리고는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어린 왕자는 사막을 횡단했는데 오직 꽃 한송이를 만났을 뿐이었다. 석 장의 꽃잎을 가진 볼품이라곤 하나도 없는 꽃이었다.


"안녕."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꽃이 말했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어린 왕자가 정중하게 물었다.


그 꽃은 언젠가 여행자단의 무리가 지나가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사람들이라구? 한 예닐곱 사람 있는것 같아. 몇 해 전에 그들을 본적이 있어. 하지만 그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야. 그들은 바람결에 불려다니거든. 뿌리가 없어서 몹시 어렵게들 살고 있어."


"안녕."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꽃이 말했다. 


  어린 왕자는 어떤 높은 산 위로 올라갔다. 그가 아는 산이라곤 그의 무릎높이 밖에 안되는 세 개의 화산이 고작이었다. 불꺼진 화산은 걸상으로 이용하곤 했었다. '이 산처럼 높은 산에서는 이 별과 사람들 모두를 한 눈에 볼 수 있을꺼야'


그러나 바늘 끝처럼 뾰족뾰족한 산봉우리만 보일 뿐이었다.


"안녕." 어린 왕자가 혹시나 하고 말해 보았다.


"안녕...... 안녕...... 안녕......" 메아리가 대답했다.


"너는 누구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지......" 메아리가 똑같이 대답했다.


"내 친구가 되어줘. 나는 외로워."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외로워...... 나는 외로워...... 나는 외로워......" 메아리가 대답했다.


"참 얄궂은 별이군! 메마르고 뾰족뾰족하고 험하고, 게다가 사람들은 상상력이 없고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되풀이하니...... 내 별에는 꽃 한송이가 있었지. 그 꽃은 언제나 먼저 말을 걸어왔는데......" 


 그래서 어린 왕자는 모래와 바위와 눈 가운데를 오랫동안 걷고 난 끝에 드디어 길을 하나 발견했다. 그런데 길들이란 모두 사람들 있는 곳으로 통하는 법이다.


"안녕."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곳은 장미가 만발한 정원이었다.


"안녕." 장미꽃들이 대답했다.


어린 왕자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그의 꽃과 쏙 빼닮았다.


"너희들은 누구니?" 어린 왕자는 어리둥절해서 물어보았다.


"우리는 장미꽃들이야." 장미꽃들이 말했다.


그러자 어린 왕자는 자신이 아주 불행하게 느껴졌다. 이 세상에 자기와 같은 꽃은 하나뿐이라고 그의 꽃은 그에게 말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원 가득히 그와 똑같은 꽃들이 오천송이나 있다니!"


'내 꽃이 이걸 보면 몹시 상심할 꺼야' 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기침을 지독히 해 대면서 창피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죽는 시늉을 하겠지. 그럼 난 간호해 주는 척 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러지 않으면 내게 죄책감을 주려고 정말로 죽어 버릴지도 몰라.'


그리고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꽃을 가졌으니 부자인줄 알았는데 내가 가진 꽃은 그저 평범한 한송이 꽃일 뿐이야. 그중 하나는 영영 불이 꺼져 버렸는지도 모를, 내 무릎까지 오는 세 개의 화산과 그 꽃으로 나는 굉장이 위대한 왕자가 될 수는 없어.'


그래서 그는 풀밭에 엎드려 울었다.


여우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안녕." 여우가 말했다.


"안녕." 어린 왕자가 얌전히 대답하고 몸을 돌렸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난 여기 사과나무 밑에 있어." 좀 전의 그 목소리가 말했다.


"넌 누구지? 넌 참 예쁘구나."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난 여우야." 여우는 말했다.


"이라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슬프단다." 어린 왕자가 제의했다.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나는 길들어져 있지 않거든." 여우가 말했다.


"아! 미안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 본 후에 어린 왕자는 다시 말했다.


"길들여진다는게 뭐지?"


"너는 여기 사는 애가 아니구나. 넌 무얼 찾고 있니?" 여우가 물었다.


"난 사람을 찾고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길들인다는게 뭐지?"


"사람들은 소총을 가지고 있고 사냥을 하지. 그게 참 곤란한 일이야. 그들은 닭도 길러.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낙이야. 너 닭을 찾니?" 여우가 물었다.


"아니야. 난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 는게 무슨 뜻이야? "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너무나 잊혀지고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 는 뜻이야. " 여우가 말했다.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여우가 말했다.


" 넌 아직 내겐 수많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 역시 마찬가지 일거야. 나도 너에게 세상에 흔한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거야."


" 무슨 말인지 조금 이해가 가." 어린 왕자가 말했다. "꽃 한송이가 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인 걸꺼야......"


" 그럴지도 모르지" 여우가 말했다. "지구는 온갖 것들이 다 있으니까....."


" 아, 아니야! 그건 지구에서가 아니야 " 어린왕자가 말했다.


여우는 몹시 궁금한 기색이었다.


" 그런 다른 별에서의?"


" 그래"


" 그 별엔 사냥꾼들이 있지?"


" 아니. 없어"


" 그거 참 이상하군! 그럼 닭은? "


"없어"


"이 세상에 완전한 데라곤 없군" 여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여우는 하던 이야기로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내 생활은 단조롭단다. 나는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닭은 모두 똑같고 사람들도 모두 똑같아. 그래서 난 좀 심심해. 하지만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히 밝아질 거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 테지만 너의 발자국 소리는 땅 밑 굴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은 먹지 않아. 밀은 내겐 아무 소용이 없어. 밀밭은 나에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그건 서글픈 일이지.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래서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밀은 금빛이니까, 나에게 너를 생각나게 할거거든. 그럼 난 밀밭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사랑하게 될꺼야...."


여우는 입을 다물고 어린왕자를 오래오래 쳐다보더니. 


"부탁이야..... 나를 길들여줘!" 하고 말했다.


"그래. 나도 그러고 싶어" 어린왕자는 대답했다. "하지만 내겐 시간이 많지 않아. 친구들을 찾아내야 하고 알아볼 일도 많아"


"우린 우리가 길들이는 것만을 알 수 있는 거란다"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상점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어린왕자가 물었다.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우선 내게서 좀 떨어져서 이렇게 풀숲에 앉아 있어. 난 너를 곁눈질해 볼꺼야. 넌 아무말도 하지 말아.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꺼야....."


다음날 어린왕자는 그리로 갔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꺼야" 여우가 말했다. "이를 테면,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겠지. 네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꺼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때나 오면 몇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의식이 필요하거든"


"의식이 뭐야?" 어린왕자가 물었다.


"그것도 너무 자주 잊혀지고 있는 거야" 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들과 다르게 만들고, 어느 한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지. 예를들면 내가 아는 사냥꾼에게도 의식이 있어.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의 처녀들과 춤을 추지. 그래서 목요일은 신나는 날이지! 난 포도밭까지 산보를 가고. 사냥꾼들이 아무때나 춤을 추면, 하루하루가 모두 똑같이 되어 버리잖아. 그럼 난 하루도 휴가가 없게 될거고......"


그래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출발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여우는 말했다.


"아아! 난 울 것만 같아"


"그건 네 잘못이야. 나는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널 길들여 주길 네가 원했잖아....." 어린왕자가 말했다.


"그건 그래." 여우의 말이었다.


"한데 넌 울려고 그러잖아!" 어린왕자가 말했다.


"그래, 정말 그래" 여우가 말했다.


"그러니 넌 이익본게 아무것도 없잖아!"


"이익본게 있지. 밀밭의 색깔 때문에 말야" 여우가 말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장미꽃들을 다시 가서 봐. 너는 너의 장미꽃이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이란 것을 깨닫게 될 거야. 그리고 내게 돌아와서 작별인사를 해줘. 그러면 내가 네게 한 가지 비밀을 선물할께"


어린왕자는 장미꽃을 보러 갔다.


"너희들은 나의 장미와 하나도 닮지 않았어. 너희들은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들에게 말했다. "아무도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 역시 아무도 길들이지 않았어. 너희들은 예전의 내 여우와 같아. 그는 수많은 다른 여우들과 꼭 같은 여우일 뿐이었어. 하지만 내가 그를 친구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이제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여우야"


그러자 장미꽃들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너희들은 아름답지만 텅 비어있어"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누가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수 없을 테니까. 물론 나의 꽃은 지나가는 행인에겐 너희들과 똑같이 생긴 것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그 꽃 한 송이는 내게는 너희들 모두보다도 더 중요해. 내가 그에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지. 내가 벌레를 잡아준 것(나비 때문에 두세 마리 남겨둔 것말고)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불평을 하거나 자랑을 늘어 놓는 것을, 또 때로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내가 귀기울여 들어 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그건 내 꽃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는 여우에게로 돌아갔다.


"안녕" 그가 말했다.


"안녕"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런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가장 중요한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가 되뇌었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건 그 꽃을 위해 내가 소비한 그 시간 이란다"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이란다"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 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것을 잊으면 안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게 되는거지.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나는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왕자는 되뇌었다.


 "안녕."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철도의 전철수(전철기를 조정하는 사람)가 말했다.


"여기서 뭘 하고 있어?" 어린 왕자가 물었다.


"한 꾸러미에 천여명씩 되는 기차 손님들을 꾸러미 별로 가려내고 있어. 그들을 싣고 가는 기차들을 어느 때는 오른쪽으로, 어느 때는 왼쪽으로 보내는 거지." 전철수가 말했다.


그 때 불을 환히 밝힌 급행 열차 한 대가 천둥처럼 소리를 내며 조종실을 뒤흔들었다.


"저 사람들은 몹시 바쁘군. 그들은 뭘 찾고 있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기관사 자신도 몰라." 전철수가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 방향에서 두번째 불을 밝힌 급행 열차가 소리를 냈다.


"그들이 벌써 되돌아오는 거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아까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지. 두 기차가 서로 엇갈리는 거야."


"그들은 있던 곳에서 만족하지 않았나 보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만족하지 않는단다." 전철수가 말했다.


그러자 세번째의 불을 밝힌 급행 열차가 우렁차게 달려왔다.


"저 사람들은 먼저번 승객들을 쫓아가고 있는거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들은 아무도 쫓아가고 있지 않아. 그들은 저 속에서 잠을 자거나 아니면 하품을 하고 있어. 오직 어린아이들만이 유리창에 코를 납짝 대고 있을 뿐이지." 전철수가 말했다.


"어린아이들만이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들은 누더기 같은 인형을 찾는라 시간을 허비하지. 그것은 그들에겐 아주 중요한 게 되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을 빼앗아 가기라도 하면 어린아이들은 울지......"


"아이들은 행복하군." 전철수가 말했다. 


 "안녕." 어린 왕자가 말했다.


"안녕." 장사꾼이 말했다.


그는 갈증을 풀어주는 새로 나온 알약을 파는 사람이었다. 일주일에 한 알씩 먹으면 마시고 싶은 욕망을 영영 느끼지 않게 되는 약이었다.


"왜 그럴 팔아?"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시간을 굉장히 절약하게 해주거든. 전문가들이 계산을 해보았어. 매주 오십 삼분씩 절약된다는 거야." 장사꾼이 말했다.


"그 오십 삼분으로 뭘하지?"


"하고 싶은걸 하지......"


'만일 나에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오십 삼분이 있다면 맑은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텐데......" 하고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사막에서 비행가가 고장을 일으킨지 여드레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비축해 두었던 물의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을 마시며 장사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네 체험담은 참 아름답구나. 하지만 난 아직도 비행기를 고치지 못했어. 마실 거라곤 없고,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수만 있다면 나도 정말 행복하겠다!" 라고 말했다.


"내 친구 여우는......" 어린 왕자가 말했다.


"꼬마 친구야, 여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냐."


"왜?"


"목이 말라 죽게 되었으니까 말야......"


어린 왕자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죽어 간다 할지라도 한 친구를 가지고 있었다는 건 좋은 일이야. 난 여우 친구가 있었다는게 기뻐......"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을 못하는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배고픔도 갈증도 느끼지 않았다. 햇빛만 조금 있으면 그에겐 충분했다.


그런데 그가 나를 바라보더니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도 목이 말라...... 우물을 찾으러 가......"


나는 소용없다는 몸짓을 했다. 광활한 사막 한 가운데에서 무턱대고 우물을 찾아나선다는건 터무니 없는 짖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몇 시간 동안을 말없이 걷고 나니 해가 지고 별들이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심한 갈증으로 나는 열이 조금 나고 있었으므로 그 별들이 마치 꿈 속에서처럼 시야에 들어왔다. 어린 왕자의 말이 내 기억 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너도 목이 마르니?" 내가 물었다.


하지만 그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이렇게만 말했다.


"물은 마음에도 좋은 것일 수 있는데......"


나는 그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잠자코 있었다...... 그에게 질문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지쳐 있었다. 그는 주저 앉았다. 나도 그의 곁에 앉았다. 그러자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별들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에......"


나는 "그렇지"하고 대답하고는 말없이 달빛 아래서 주름처럼 펼쳐져 있는 모래 언덕들을 바라보았다.


"사막은 아름다워." 그가 다시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언제나 사막을 사랑해 왔다. 사막에서는 모래 언덕 위에 앉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인가 침묵 속에서 빛나는 것이 있는 것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막의 그 신비로운 빛남이 무엇인가를 나는 문득 깨닫고 흠칫놀랐다. 어린 시절 나는 해묵은 낡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집에는 보물이 갑춰져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것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우리 집은 저 가장 깊숙한 곳에 보물을 감추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집이건 별이건 혹은 사막이건 그들을 아름답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지!" 내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아저씨도 내 여우하고 같은 생각이어서 기뻐." 그가 말했다.


어린 왕자가 잠이 들었으므로 나는 그를 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감동되어 있었다. 부서지기 쉬운 보물을 안고 가는 느낌가지 들었다. 마치 이 지구에는 그보다 더 부서지기 쉬운게 없을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창백한 이마, 감겨있는 눈, 바람결에 나부끼는 머리칼을 달빛 아래에서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보고 있는 건 껍질뿐이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반쯤 열린 그의 입술이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띠고 있었으므로 나는 또 생각했다. '이 잠든 어린 왕자가 나를 이토록 몹시 감동시키는 것은 꽃 한송이에 대한 그의 성실성, 그가 잠들어 있을 때에도 램프의 불꽃처럼 그의 마음 속에서 빛나고 있는 한 송이 장미꽃의 모습이야......' 그러나 그가 더욱 부서지기 쉬운 존재라는 짐작이 들었다. 램프의 불은 잘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것은 한줄기 바람에도 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렇게 걸어가다가 나는 동이 틀 무렵에 우물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급행열차에 올라타지만 그들이 찾으러 가는게 무엇인지 몰라. 그래서 초조해 하며 제자리에 맴돌고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소용없는데......"


우리가 찾아낸 우물은 사하라의 우물과는 달랐다. 사하라의 우물은 그저 모래에 파놓은 구멍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 우물은 마을에 있는 우물과 흡사했다. 그러나 그곳에 마을이라곤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이상하군." 내가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모든게 갖추어져 있잖아. 도르래, 물통, 밧줄......"


그는 웃으며 줄을 잡고 도르래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도르래는 바람이 오랫동안 잠을 자고 있을 때 낡은 풍차가 삐걱이듯 그렇게 삐걱거렸다.


"아저씨 들어봐. 우물을 깨웠더니 그가 노래를 불러......" 어린 왕자는 말했다.


나는 그에게 힘든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께. 너에겐 너무 무거워."


나는 천천히 두레박을 우물 둘레의 돌까지 들어올렸다. 나는 그것을 돌 위에 떨어지지 않게 올려놓았다. 내 귀에는 도르래의 노랫소리가 아직도 쟁쟁하게 울렸고, 아직도 출렁이고 있는 물속에서는 햇살이 일렁이는게 보였다.


"이 물을 마시고 싶어. 물을 좀 줘......"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자 나는 , 그가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두레박을 그의 입술로 가져갔다. 그는 눈을 감고 물을 마셨다. 축제처럼 즐거웠다. 그 물은 보통 음료와는 다른 어떤 것이었다. 그것은 별빛 아래에서의 행진과 도드래의 노래와 내 두팔의 노력으로 태어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선물을 받았을 때 처럼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과 자정미사의 음악과 사람들의 미소의 부드러움이 내가 받는 선물을 마냥 황홀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었다.


"아저씨 별의 사람들은 한 정원 안에 장미꽃을 오천송이나 가꾸지만...... 그들이 찾는 것을 거기서 발견하지는 못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꽃 한송이나 물 한모금에서도 발겨될 수 있는건데......"


"물론이지."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어린 왕자는 덧붙였다.


"그러나 눈으로는 보지 못해. 마음으로 찾아야 해."


나도 물을 마시고난 후였다. 숨결이 가벼워졌다. 해가 돋으면 모래는 꿀빛깔을 띤다. 나는 그 꿀빛깔에도 행복했다. 괴로워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약속을 지켜줘야 해." 어린 왕자가 내게 살며시 말했다. 그는 다시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무슨 약속?"


"약속했잖아...... 양에게 굴레를 씌워 준다고...... 난 그 꽃한테 책임이 있어!"


나는 끄적거려 두었던 그 그림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어린 왕자는 그림들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가 그린 바오밥나무들은 뿔 비슷하게 생겼어......"


"아, 그래!""


나는 바오밥나무 그림에 대해 몹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우는 귀가 뿔같애...... 너무 길어!"


그리고 그는 또 웃었다.


"너는 너무 심하구나. 나는 속이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하는 보아 구렁이밖에 못 그린다니까."


"아냐. 괜찮아, 아이들은 알고 있으니까." 그가 말했다.


그래서 난 연필로 굴레를 그렸다. 그 굴레를 어린 왕자에게 주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었다.


"네가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러자 어린 왕자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구에 떨어진지도...... 내일이면 일년이야......"


그리고는 잠시 묵묵히 있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바로 이 근처에 떨어졌었어......"


그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웬지 모르게 나는 또다시 야릇한 슬픔이 솟구쳤다. 그런데도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럼 일주일 전 내가 너를 알게 된 날 아침에 사람 사는 고장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여기서 네가 혼자 걷고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구나. 떨어진 지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니?"


어린 왕자는 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래서 머뭇거리며 나는 말을 이었다.


"아마 일년이 다 되었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


어린 왕자는 또 얼굴을 붉혔다. 그는 묻는 말에 결코 대답하진 않았으나 얼굴을 붉힌다는 것은 그렇다는 뜻이 아닌가?


"아! 난 두려워져"


그런데 그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이제 일을 해야 해. 아저씨 기계로 돌아가. 난 여기서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을테니 내일 저녁에 돌아와......"


하지만 나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여우 생각이 났다. 길들여졌을 때 좀 울게 될 염려가 있는 것이다.


우물 옆에는 거의 무너진 낡은 돌담이 있었다. 다음 날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보니 어린 왕자가 그 위에 걸터 앉아 다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게 들렸다.


"생각나지 않니? 정확히 여기는 아니야!"


그가 다시 대꾸를 하는 걸로 미루어 또 다른 목소리가 그에게 대답하는 듯 했다.


"아니야, 아니야. 날짜는 맞지만 장소는 여기가 아니야......"


나는 담벽을 향해서 걸어갔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는데도 어린 왕자는 다시 대꾸를 하고 있었다.


"......물론이지. 모래 위의 내 발자국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가서 봐. 거기서 날 기다리면 돼. 오늘밤 그리로 갈께."


나는 담벽에서 20미터쯤 떨어져 있었는데 여전히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어린 왕자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네 독은 좋은 거니? 틀림없이 날 오랫동안 아프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지?"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 우뚝 멈춰섰다. 아무래도 무슨 이야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이제 가봐. 내려갈테야."


그제서야 나도 담밑을 내려다보고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거기에는 삼심 초만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저 노란 뱀 하나가 어린 왕자를 향해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지 않은가. 나는 권총을 꺼내려고 주머니를 뒤지며 막 뛰어갔다. 그러나 내 발자국 소리에 뱀은 모래 속으로 스르르 물줄기가 잦아들 듯 미끄러져 들어가더니 가벼운 금속성 소리를 내며 돌들 사이로 조금도 허둥대지 않고 교묘히 몸을 감추어 버렸다.


나는 돌담 밑에 이르러 눈처럼 새하얗게 창백해진 나의 어린 왕자를 간신히 품에 받아 안을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지? 이젠 뱀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나는 그가 늘 목에 두르고 있는 그 금빛 머플러를 풀렀다. 관자놀이에 물을 적시고 물을 마시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에게 무어라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나른 진지한 빛으로 바라보더니 내 목에 두 팔을 감았다. 카빈 총에 맞아 죽어가는 새처럼 그의 가슴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아저씨가 고장난 기계를 고치게 되어서 기뻐. 아저씬 이제 집에 돌아가게 됐지......"


"그걸 어떻게 알지?"


천만 뜻밖에 기계를 고치는 데 성공했다는 걸 그에게 알리려던 참이 아니었던가!


그는 내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오늘 집으로 돌아가......"


그러더니 쓸쓸히,


"그건 훨씬 더 멀고...... 훨씬 더 어려워......"


무엇인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를 어린 아기처럼 품에 꼬옥 껴안았다. 그런데도 내가 붙잡을 사이도 없이 그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물끄러미 아득한 곳을 바라보는 듯한 심각한 눈빛이었다.


"나에겐 아저씨가 준 양이 있어. 그리고 그 양을 넣어 둘 상자도 있고, 굴레도 있고......"


그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그가 조금씩 조금씩 몸이 따뜻해 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꼬마야, 넌 겁이 났었지......"


그가 무서워하고 있었던 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는 부드럽게 웃었다.


"오늘 저녁엔 더 무서울거야......"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에 나는 다시금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 웃음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리라는 생각이 견딜 수 없는 일임을 나는 문득 깨달았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는 사막의 샘같은 것이었다.


"얘, 네 웃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 밤으로 꼭 일년이 돼. 나의 별이 내가 작년 이맘때 떨어져 내린 그 장소 바로 위쪽에 있게 될거야......"


"얘, 그 뱀이니, 만날 약속이니, 별이니 하는 이야기는 모두 못된 꿈같은 거 아니니......"


그러나 그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물론이지."


"꽃도 마찬가지야. 어느 별에 사는 꽃 한송이를 사랑한다면 밤에 하늘을 바라보는 게 감미로울거야. 별들마자 모두 꽃이 필 테니까."


"물론이지......"


"물도 마찬가지야. 아저씨가 내게 마시라고 준 물은 음악 같은 것이었어. 도르래와 밧줄 때문에...... 기억하지...... 물맛이 참 좋았지."


"그래......"


"밤이면 별들을 쳐다봐. 내 별은 너무 작아서 어디 있는지 지금 가리켜 줄 수가 없어. 그 편이 더 좋아. 내 별은 아저씨에게는 여러 별들 중의 하나가 되는 거지. 그럼 아저씬 어느 별이든지 바라보는게 즐겁데 될테니까...... 그 별들은 모두 아저씨 친구가 될거야. 그리고 아저씨에게 내가 선물을 하나 하려고 해......"


그는 다시 웃었다.


"아, 어린 왕자야. 난 그 웃음소리가 좋다!"


"그게 바로 내 선물이 될꺼야...... 그건 물도 마찬가지야......"


"무슨 뜻이지?"


"사람들에 따라 별들은 서로 다른 존재야. 여행하는 사람에겐 별은 길잡이지. 또 어떤 사람들에겐 그저 조그만 빛일 뿐이고, 학자인 사람에게는 연구해야 할 대상이고. 내가 만난 사업가에겐 금이지. 하지만 그런 별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어. 아저씬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별들을 갖게 될거야......"


"무슨 뜻이니?"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면 내가 그 별들 중의 하나에 살고 있을 테니까. 내가 그 별들 중의 하나에서 웃고 있을 테니까, 모든 별들이 다 아저씨에겐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거야. 아저씬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가지게 되는 거야!" "


그리고 그는 웃었다.


"그래서 아저씨의 슬픔이 가셨을 때는 (언제나 슬픔은 가시게 마련이니까) 나를 안 것을 기뻐하게 될거야. 아저씨는 언제까지나 나의 친구로 있을 거야. 나와 함께 웃고 싶을거고. 그래서 이따금 그저 괜히 창문을 열게 되겠지...... 그럼 아저씨 친구들은 아저씨가 하늘을 바라보며 웃는 걸 보고 굉장히 놀랄테지. 그러면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줘. <그래, 별들을 보면 언제나 웃음이 나오거든!> 그들은 아저씨가 비쳤다고 생각하겠지. 난 그럼 아저씨에게 못할 짓을 한 셈이 되겠지......"


그리고는 그는 다시 웃었다.


"별들이 아니라 웃을 줄 아는 조그만 방울들을 내가 아저씨에게 한아름 준 셈이 되는 거지......"


그리고 그는 또 웃었다. 그러더니 다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오늘밤은...... 오지 마."


"난 네 곁을 떠나지 않겠어."


"난 아픈 것 같이 보일거야...... 꼭 죽는 것처럼 보일거야. 그러게 마련이거든. 그런걸 보러 오지마. 그럴 필요 없어."


"난 네 곁을 떠나지 않겠어."


그러나 그는 근심스러운 빛이었다.


"내가 이런 말 하는건...... 뱀 때문이야. 뱀이 아저씨를 물면 안되거든...... 뱀은 무서워. 괜히 장난삼아 물기도 하거든......"


"난 네 곁을 떠나지 않을꺼야."


그러나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는 안심하는 듯 했다.


"두번째 물 때는 독이 없다는게 사실이야......"


그날 밤 나는 그가 길을 떠나는 걸 보지 못했다. 그는 소리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뒤쫓아가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빠른 걸음으로 주저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아! 아저씨 왔어......"


그리고는 내 손을 잡았다. 그러나 그는 다시 걱정을 했다.


"아저씨가 온 건 잘못이야. 마음 아파할 텐데, 내가 죽은 듯이 보일테니까. 정말로 죽는건 아닌데......"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풀이 죽어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기운을 내려 애쓰고 있었다.


"참 좋겠지. 나도 별들을 바라볼꺼야. 모든 별들은 모두 내게 녹슨 도르래가 있는 우물로 보이게 될 테니까. 별들이 모두 내게 마실 물을 부어 줄 거야......"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참 재미있겠지! 아저씬 오억 개의 작은 방울들을 가지게 되고 난 오억개의 샘물을 갖게 될테니......"


그리고는 그 역시 더 이상 아무말이 없었다. 그는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기야. 나 혼자 걸어가게 내버려 둬 줘."


그러더니 그는 그 자리에 앉았다.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아저씨...... 내 꽃 말인데...... 나는 그 꽃에 책임이 있어! 더구나 그 꽃은 몹시 연약하거든! 너무나 순진하고, 쓸모 없는 네개의 가시를 가지고 외부 세계에 대해 자기 몸을 방어하려고 하고......"


나는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어 주저 앉았다. 그가 말했다.


"자...... 이제 다 끝났어......"


그는 또 잠깐 망설이더니 다시 일어섰다.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나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발목에서 노오란 한 줄기 빛이 반짝햇을 뿐이었다. 그는 한순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소리치지 않았다. 나무가 쓰러지듯 그는 천천히 쓸러졌다. 모래 바닥이라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게 벌써 여섯 해 전의 일이었다......


이 이야기를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나와 다시 만난 친구들은 내가 살아 돌아온 걸 매우 기뻐했다. 나는 슬펐지만 피곤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이제는 내 슬픔도 약간 가셨다. 다시 말해...... 완전히 싹 가셔버린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의 별로 돌아갔다는 걸 알고 있다. 다음날 해가 떴을 때 그의 몸을 다시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몸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그래서 밤이면 나는 별들에게 귀기울이기를 좋아한다. 그것들은 흡사 오억개의 작은 방울들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어린 왕자에게 그려준 굴레에 가죽끈을 달아준다는 걸 내가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별에게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양이 꽃을 먹었을까......' 하고 궁금해 하곤 했다.


어느 때는 '천만에, 먹지 않았겠지! 어린 왕자는 그의 꽃을 밤새도록 유리덮개로 잘 덮어 놓겠지. 양을 잘 지킬테고......' 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면 나는 행복해진다. 그러면 모든 별들이 부럽게 웃는다.


어느 때는 '어쩌다가 방심할 수도 있지. 그러면 끝장인데! 어느날 밤 유리 덮개 덮는 것을 잊었거나 양이 밤중에 소리없이 밖으로 나왔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작은 방울들은 모두 눈물 방울들로 변한다!


그것은 정말 커다란 수수께끼다. 어린 왕자를 사랑하는 여러분에게는 나에게도 그렇듯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한 마리 양이 한 송이 장미꽃을 먹었느냐 먹지 않았느냐에 따라서 천지가 온통 달라지게 될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라. 생각해 보라. 양이 그 꽃을 먹었을가 먹지 않았을까? 그러면 거기에 따라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여러분은 알게 되리라.


그런데 그것이 그다지도 중요한가를 어른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그리고 가장 슬픈 풍경이다. 이것은 앞 페이지의 것과 같은 풍경이지만 여러분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 다시 한 번 그린 것이다. 어린 왕자가 지상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진 곳이 여기다.


이 그림을 자세히 잘 보아 두었다가 여러분이 언젠가 아프리카 사막을 여행할 때, 이와 똑같은 풍경을 꼭 알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 그리로 지나가게 되거든 발걸음을 서두르지 말고 잠깐 별빛 밑에서 기다려 보길 간곡히 부탁한다! 그때 만일 한 어린아이가 여러분에게 다가와서 웃으면, 그리고 그의 머리칼이 금빛이면, 그리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으리라. 그러면 내게 친절을 베풀어 주길! 내가 이처럼 마냥 슬퍼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그애가 돌아왔다고 빨리 편지를 보내 주기를...... 

 

// 어린왕자 전문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