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양지인 (宋襄之仁) 어리석게 큰 의리와 인정을 베풀다가 오히려 해를 입었다

명분은 순리와 이치를 앞세워 감동을 줄 수 있지만, 현실은 결코 명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베푼다는 것도 명분에 맞아야 하지만 이 역시 실질적 이해타산이 전제이다.

송양지인 (宋襄之仁)

 패업(霸業)에 뜻을 두었다가 초나라에게 사로잡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만 송양공(宋襄公)은 큰 치욕을 당해 원망하는 마음이 골수에 사무치게 되었으나 단지 힘이 닿지 못하여 원한을 갚을 길이 없었다. 또한 정백(鄭伯)이 앞장서서 초왕을 맹주로 추대한 것을 괘씸하게 생각하여 언젠가는 한번 그 죄를 물으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주양왕(周襄王) 14년 즉 기원전 637년 봄 3월에 정문공(鄭文公)이 초나라에 조례를 다녀온 것을 송양공이 듣고 대노했다. 즉시 나라의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친히 군사를 이끌고 정나라를 토벌하려고 하면서 공자 목이에게는 세자 왕신(王臣)을 도와 송나라를 지키도록 당부하였다. 목이가 듣고 간하며 말했다.



송양지인


“ 초와 정은 서로 친하여 우리가 만약 정나라를 친다면 초나라는 반드시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사를 보낼 것입니다. 앞뒤에서 적군을 맞이하게 되시면 이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차라리 때를 기다리면서 국내에서 실력을 기르는 것이 상책이라 하겠습니다.”

대사마 공손고(公孫固)도 역시 출정을 만류하자 양공이 화를 내며 말했다.

“ 사마가 같이 가기를 원하지 않으니 과인 혼자서라도 가서 정나라를 정벌하여야겠다!”

공손고가 감히 다시 간하지 못했다. 그 즉시 군사를 일으킨 송양공은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행군을 시작했다. 송양공은 스스로 대장이 되어 중군을 이끌고 공손고를 부장으로 하고 대부 락복이(樂僕伊), 화수노(華秀老), 공자탕(公子蕩), 향자수(向訾守) 등이 모두 그 뒤를 따랐다.

한편 송나라에 있던 정나라의 첩자가 달려와 송나라가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군사를 일으켰다고 정문공에게 고했다. 첩자의 보고를 받은 정문공은 사자를 초나라에 달려가게 하여 구원을 청했다. 정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은 초성왕이 말했다.

“ 정나라가 우리를 마치 어버이 대하듯이 받들고 있는데 마땅히 만사를 제쳐두고 구해야할 것이다.”

성득신이 곁에 있다가 초성왕에게 진언을 하였다.

“ 정나라를 구하려고 한다면 직접 송나라를 공격해야 할 것입니다.”

성왕 “ 어째서 그런가?”

성득신이 설명했다.

“ 송공이 예전에 우리에게 사로잡힌 일로 지금 송나라 사람들은 간담이 서늘해져 있습니다. 오늘 다시 송공이 스스로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대병을 일으켜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동했습니다. 이는 본국이 텅텅 비어 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그 틈을 타서 쳐들어가면 송나라는 필시 정나라에 출병중인 군사를 물리쳐 자기 나라를 구하기 위해 달려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싸우기도 전에 그 승패가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나라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송군은 오랜 행군 끝에 피로에 지칠 것입니다. 이것은 편안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 초군이 피로에 지친 군사를 맞이해서 싸우는 이치입니다. 어찌 우리 초군이 이길 수 없겠습니까?”

초왕이 성득신의 계책을 받아들여 대장으로 삼고 투발(鬪勃)을 부장으로 임명하여 군사를 일으켜 송나라를 정벌하도록 했다.

한편 송양공은 정나라 도성밖에 진영을 세우고 서로 대치하고 있으면서 전기를 엿보고 있던 중에 초나라의 군사들이 송나라 본국을 향해 진격해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깜짝 놀라 송양공은 군사를 황급히 거두어 밤낮으로 행군한 끝에 홍수(泓水)의 북쪽 강변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그곳에서 초나라 군사를 막으려고 했다. 뒤이어 성득신이 이끄는 초군도 홍수(泓水)의 남쪽 강변에 도착하여 진채를 세운 후에 송나라 진영에 사람을 보내 전서(戰書)를 띄웠다. 전서를 받아본 송나라 진영의 공손고가 자기의 의견을 양공에게 말했다.

“ 초나라의 군사들이 여기까지 달려 온 것은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정나라를 다시는 침공하지 않겠다고 초나라에 사죄를 한다면 초나라는 군사들을 틀림없이 물리칠 것입니다. 이쯤에서 강화를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양공 “ 옛날에 제환공(齊桓公)은 군사를 이끌고서 먼길을 행군한 끝에서야 초나

라를 정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초나라가 일부러 군사를 이끌고 먼길을 행군하여 이곳까지 와서 우리와 싸움을 걸고 있다. 어찌 환공의 백업을 이을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겠는가?”

공손고 “ 신은 듣건대 ‘한번 망한 왕조는 두 번 일어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늘

이 우리 선조들이 세운 상나라를 버린 지 오랜데 주군께서는 다시 일으키시려고 하십니다. 어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더구나 우리의 방어 무기는 초군의 그것보다 견고하지 못하고 군사들 역시 초나라 병사들보다 정예하지 못합니다. 군사들의 체력도 초나라 군사들에게 떨어지며 또한 송나라 사람들은 초나라 군사를 보기를 마치 사갈(蛇蝎)을 보듯이 무서워하고 있는데 주군께서는 무엇을 믿고 초나라와 싸워 승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양공 “ 초군의 수효가 많다고는 하나 그들의 군대는 인의(仁義)가 없다. 송나라의

군사는 그 수효가 비록 적다고는 하나 인의(仁義)의 정신으로 뭉쳐진 군사들이다. 옛날에 주무왕이 목야(牧野)1)의 싸움에서 호분(虎賁)2) 삼천 명으로 은나라의 억만 군사와 싸워 이긴 것은 오로지 무왕의 군사들이 인의의 군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무도한 신하를 피하여 도망치는 유덕한 군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과인으로써는 비록 죽을지언정 그렇게는 할 수 없도다!”

양공이 즉시 전서의 말미에 서명을 하여 11월 삭일에 홍수(泓水) 북쪽의 땅에서 회전을 하기로 약속하고 군사들에게 명하여 큰 기를 만들어 인의(仁義)라는 두 글자를 쓴 후에 로거(輅車)에 매달게 했다. 공손고가 비통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조용히 락복이(樂僕伊)를 불러 불만을 털어놓았다.

“ 전쟁이라는 것은 서로 죽이고 죽는 살벌한 싸움인데 가당찮은 인의만을 부르짖고 있으니 나는 주군이 말하는 인의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소! 하늘이 우리 주군의 혼백을 빼앗아 가버려 우리는 정말로 위급한 상황에 빠진 것 같소! 우리들은 필히 경계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전투에 임하여 나라를 잃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할 것이오. ”

고 회전을 하기로 한 날이 되자 공손고가 아직 닭이 울기도 전에 기상하여 양공을 배알하고 진용을 엄하게 정비한 다음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한편 초군을 이끌고 홍수의 남쪽 강변에 주둔하고 있던 성득신에게 부장 투발(鬪發)이 와서 의견을 말했다.

“ 송나라 군사들이 포진을 끝내고 우리의 진격을 막아서기 전에 강을 건너려고 한다면 아침 새벽 오고(五鼓)3) 때 해야 할 것입니다.”

성득신이 웃으면서 말했다.

“ 송공은 세상물정에 어둡고 병사의 일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위인입니다. 내가 강을 이른 아침에 건넌다면 싸움은 일찍 일어날 것이고 천천히 건넌다면 싸움은 늦게 일어 날 것입니다.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

드디어 날이 밝아 오자 초나라의 병거와 갑병들이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공손고가 초나라의 병사들의 강은 건너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양공에게 청했다.

“ 초나라 군사들이 날이 밝기를 기다려 우리가 보는 앞에서 유유히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은 우리 송나라를 깔보고 있는 것입니다. 초나라 군사들이 강을 절반쯤 건넌 지금이야말로 앞으로 돌격하여 공격할 때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송나라 전군으로서 초나라의 군사들의 절반을 꺾을 수 있습니다. 만약 초군이 강을 다 건넌다면 초나라 군사들의 수가 우리의 두 배가 넘어 대적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송양공이 손가락으로 인의(仁義)가 써진 큰 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 그대는 저 기에 쓰인 인의(仁義)라는 두 글자가 보이지 않는가? 과인은 진을 펼쳐 당당하게 싸워서 이기려고 하는데 어찌 강을 다 건너오지도 못한 적군을 공격할 수 있단 말인가?”

공손고가 양공의 답답한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울부짖을 뿐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초나라 병사들은 모두 무사히 강을 건너게 되었다. 긴 채찍을 손에 들고 군사들을 포진시키기 위해 지휘하고 있는 초군 대장 성득신의 모습은 마치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그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는 듯이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옥으로 장식한 끈으로 맨 역시 옥으로 장식한 투구를 머리에 쓴 성득신은 몸에는 화려한 수가 놓여진 비단 전포 위에 부드러운 천으로 겹겹이 누벼 만든 갑옷을 껴입고 허리에는 조각을 하여 아름답게 장식한 조궁(雕弓)을 차고 있었다. 공손고가 다시 양공에게 달려와 말했다.

“ 초나라 병사들이 금방 포진을 시작한 관계로 아직 대오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급히 북을 울려 우리의 군사들을 앞으로 돌진시킨다면 초나라 진영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

양공이 공손고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욕을 했다.

“ 정말로 답답한 놈이로다! 너는 일시적인 승리만을 탐하여 만세에 빛날 인의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놈이로구나! 과인의 정정당당한 군사들로 하여금 어찌 대오도 갖추지 못한 적군을 향하여 북소리를 울려 공격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이냐?”

공손고가 가슴속에서 울어 나는 분노를 삼키며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에 초나라의 군사들은 전투 대오를 갖추게 되었다. 초나라 진영은 그 군사들은 물론이고 병거를 끄는 말들도 모두 씩씩하기 짝이 없었다. 삽시간에 초나라의 보졸들과 병거들이 넓은 들판을 가득 메웠다. 송나라 병사들이 보고 얼굴에 두려운 기색을 띄웠다. 양공이 북소리를 울려 진격하라고 명령을 내리자 초나라 진영에서도 역시 북소리가 울렸다. 송양공이 스스로 긴 창을 손에 들고 공자탕(公子蕩)과 향자수(向訾守)의 호위를 받으며 궁궐의 문을 지키던 위병(衛兵)만으로 구성된 군사들을 이끌고 병거를 휘몰아 초나라 진영을 향해 돌진했다. 송군의 기세가 매우 흉맹한 것을 본 성득신이 전령을 보내 명령을 하달하여 초나라 진채의 문을 열어 송양공이 거느린 일대의 거만만을 안으로 들이게 했다. 공손고가 양공의 뒤를 바짝 쫓아 양공을 보호하려고 하였으나 양공은 이미 초나라의 진영 안으로 쇄도해 들어가고 난 후였다. 초나라 진영 영문 앞에 버티고 서 있던 장군 한 사람이 공손고를 보자 소리쳤다.

“ 자! 빨리 이쪽으로 와서 본격적으로 한번 싸워 보자!”

그 장수를 자세히 보니 초나라의 부장(副將)인 투발(鬪發)이었다. 공손고가 듣고 분기탱천하여 극을 손에 들고 투발을 찌르려고 달려들자 투발이 허리에서 칼을 빼들고 대적했다. 두 사람이 서로 어우러져 칼과 창을 주고받는데 미처 20여 합도 겨루기 전에 송나라 장수 락복이(樂僕伊)가 한 떼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싸움을 거들었다. 투발의 얼굴에 황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침 초나라 진영에서 한 사람의 장군이 달려 나와 싸움에 밀리고 있던 투발을 도왔다. 그 장수는 초나라의 상장(上將) 위여신(蔿呂臣)이었다. 위여신은 락복이에게 달려들어 어우러져 싸웠다. 공손고가 양쪽 진영이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주위를 한 번 살펴보고 나서 극을 땅에 버리더니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 들고 초나라 영채를 향해 돌입했다. 투발이 역시 극을 버리고 칼을 휘두르며 공손고의 뒤를 쫓았다. 그때 다시 송장 화수노가 달려와 투발의 앞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이 양쪽 진영 사이에서 어우러져 혼전을 벌렸다. 이윽고 초나라 진영 안으로 간신히 돌입하여 좌충우돌하던 공손고는 동쪽 모퉁이에서 철갑으로 무장한 갑사들이 마치 숲을 이룬 듯이 무엇인가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 보았다. 공손고는 타고 있던 병거를 황급히 몰아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때 마침 유혈이 낭자한 얼굴로 포위망 속에서 빠져나온 향자수가 공손고를 향해 황급히 외쳤다.

“ 사마는 속히 와서 주군을 구하시오!”

공손고는 향자수를 쫓아 겹겹이 둘러쳐진 포위망을 뚫고 혼전이 벌어지고 있는 싸움터 안으로 들어갔다. 위병들로 구성된 많은 송나라 군사들은 하나 같이 몸에 중상을 입고 있었으나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뒤로 물러나지 않고 있었다. 위병들이 목숨을 걸고 용감히 싸운 것은 평소에 그들에게 후하게 베푼 양공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해서였다. 더욱이 송군 진영에 새로 합류한 공손고가 매우 영용(英勇)하다는 것을 본 초군은 양공에 대한 포위망을 풀고 뒤로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공손고가 앞으로 나가 살펴보니 중상을 입은 공자탕(公子蕩)이 인의라고 쓴 큰 기를 싣고 다닌 병거 아래에 누워 있었다. 그때 인의대기(仁義大旗)는 이미 초나라 군사들이 병거에서 떼어내 탈취해 간 후였다. 양공도 몸의 여러 곳을 창에 찔리고 더욱이 오른쪽 넓적다리에 화살을 맞아 무릎의 힘줄이 끊어져 일어 설 수 없을 정도로 중상을 입고 있었다. 공손고가 자기 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본 공자탕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 사마는 빨리 와서 주군을 부축하여 데려가시오. 나는 이곳에서 목숨이 다한 것 같소!”

공자탕은 말을 마치고 숨을 거뒀다. 공손고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공손고가 양공을 부축하여 자기의 병거에 옮겨 싣고 몸으로 양공을 가려 보호하며 용기 백배하여 포위망을 뚫고자 했다. 향자수가 후위를 맡고 위병들은 병거의 양쪽을 호위하면서 한편으로는 싸우고 또 한편으로는 도망쳤다. 공손고의 일행이 초나라 진영 밖으로 나왔을 때는 데리고 갔던 위병들은 한 명도 같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싸움 중에 꺾인 송나라의 병거와 무장병들은 십중팔구에 달했다. 영채 밖에서 초군과 싸우던 락복이와 화수노는 송양공이 호랑이 굴에서 탈출해 나오는 것을 보고 지금까지 싸웠던 초나라 장수들을 버리고 각자 등을 돌려 달아났다. 승세를 탄 성득신이 초군을 휘몰아 송군의 뒤를 쫓았다. 송군은 크게 무너져 달아났다. 송군이 버리고 간 치중과 무기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자기 병거에 양공을 태운 공손고는 쉴새없이 전차를 몰아 도망쳐 수양성(睢陽城)에 간신히 당도했다. 송나라의 군사들은 대부분이 싸움 중에 죽어 그 부모처자가 모두 조문밖에 모여서 양공이 사마의 말을 듣지 않아서 싸움에 지게된 것이라고 하면서 원망의 말을 외쳤다. 양공이 백성들의 말을 전해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 ‘ 군자는 부상당한 사람을 다시 공격하지 않으며, 반백의 나이 먹은 사람은 포로로 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과인이 인의로써 군사를 일으켰는데 어떻게 하여 남의 위태로움을 이용하여 적을 괴롭힐 수가 있겠느냐?”

그 소리를 전해들은 송나라의 온 백성들은 조소하고 비웃었다. 송양공이 헛된 인의를 행하려다 싸움에 져서 많은 군사를 죽게 만들었다는 뜻의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말을 만들어 후세 사람들에 전한 것은 홍수의 싸움에서 일어난 일을 말한 것이다. 염옹이 시를 지어 송양공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등(滕)과 증(鄫) 두 나라 군주들에게는 엄하게 대하고

초군에게는 오히려 관대하게 굴더니,

정녕 허벅지에 화살을 맞아

부상을 당한 끝에 헛된 이름을 얻었다.

송양공이 행한 것이 진실로 인의일 것 같으면

도척(盜拓)과 문왕(文王)이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不恤滕鄫恤楚兵(불휼등중휼초병)

寧甘傷股博虛名(녕감상고박허명)

宋襄若可称仁義(송양약가칭인의)

盜拓文王兩不明(도척문왕양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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