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를 심었는가

창가에 놓인 화분의 제라늄이 연분홍 꽃을 피웠다. 봄에 뿌린 씨앗이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 색을 드러낸 것이다. 물방울이 흙을 적시고, 햇살이 잎맥을 따라 스며드는 몇 달간, 작은 화분은 매일 아침 커튼 너머로 다른 빛을 보여주었다. 꽃잎이 조금씩 벌어지는 모습, 그것만으로도 하루의 공기가 달라졌다.


나는 누구를 심었는가

사람이 사람을 만나 1년을 행복하려면 꽃을 심으라했고, 10년을 행복하려면 나무를 심으라했고, 100년을 행복하려면 마음에 그 사람을 심으라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1년을 행복하려면 꽃을 심으라했고, 10년을 행복하려면 나무를 심으라했고, 100년을 행복하려면 마음에 그 사람을 심으라 했습니다

"1년을 행복하려면 꽃을 심으라"는 말이 있다. 꽃은 계절을 따라 피고 지지만, 그 짧은 생명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의 충만함을 보여준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장미,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창틀에서 고개를 내민 제라늄. 이들은 모두 오늘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꽃을 심는다는 것은 찰나의 빛을 포착하는 일이다. 한여름 소나기 뒤 활짝 벌어진 봉오리, 가을 서리 직전 마지막으로 피어난 국화. 꽃은 기다림 없이 지금을 선물한다.

하지만 자연에는 더 긴 호흡으로 흐르는 시간들이 있다. 마당 한편에 심은 작은 감나무 묘목. 처음엔 바람에도 흔들리던 가느다란 줄기였다. "10년을 행복하려면 나무를 심으라"는 말처럼, 그 나무는 급하지 않았다. 계절이 오고 가든 말든, 제 속도로 제 길을 갔다. 봄마다 연두빛 잎을 틔웠고, 여름이면 짙은 초록으로 그늘을 만들었으며, 가을엔 주황빛 열매를 조용히 매달았다.

몇 해가 지나 그 나무가 지붕을 넘볼 만큼 자랐을 무렵, 비로소 보였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시간을 믿는 일이라는 것이. 당장의 결과를 재촉하지 않고, 매 계절 조금씩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라는 것이. 겨울의 앙상한 가지도, 봄의 새순도, 여름의 무성함도, 가을의 낙엽도 모두 나무의 시간 속에 담겨 있었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깊이 내려가고, 가지는 하늘을 향해 뻗어갔다. 서두르지 않는 성장의 인내.

그런데 진정으로 긴 시간은 어디에 머무는 걸까. 꽃은 시들고, 나무도 언젠가는 고목이 된다. 하지만 "100년을 행복하려면 마음에 그 사람을 심으라"는 말처럼, 어떤 것들은 형체를 넘어 영원에 가까이 다가간다.

오래된 정원의 벤치에 앉으면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수십 년 전 심어진 느티나무의 그늘, 세월을 머금은 돌담에 피어난 이끼,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돋아나는 수선화. 이곳을 거쳐 간 무수한 계절들, 내린 비, 불어온 바람, 쌓였던 눈.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지만, 그 시간들이 땅에 스며들어 지금의 정원을 이루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층위들.

마음에 심는다는 것은 꽃을 심는 것처럼 즉각적이지도, 나무를 심는 것처럼 가시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가며 남기는 소리 같은 것, 달빛이 물에 비쳐 만드는 흔들림 같은 것. 형체는 없지만 공기를 바꾸고, 색을 입히고, 온도를 바꾼다. 한여름 밤 풀숲에서 들려오는 벌레 소리, 가을 아침 안개 낀 숲길, 겨울 눈 내린 뒤의 고요. 이런 것들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깊은 곳에 새겨진다.

요즘은 작은 화분에 씨앗을 뿌린다. 씨앗이 싹을 틔우며 오늘의 기쁨을 보여주기를, 언젠가는 나무가 자라며 계절의 인내를 가르쳐주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마음에 깃들며 진정한 충만함을 알려주기를 기다리며.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창가의 꽃, 마당의 나무,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공기를 채우는 것들. 이 작은 것들이 시간을 타고 흐르며 쌓이는 것, 그것이 가장 확실한 행복의 모습이 아닐까. 오늘도 화분에 물을 주고, 감나무 그늘 아래 앉아, 바람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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