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제5화 나는 바람둥이다

제5화 나는 바람둥이다 

B는 마음이 그렇게 모진 사람이 아니었다. 

B는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 내 집에 왔으니 차 한잔 마시고 가면 되겠지, 이제 와서 무슨 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그녀에게 들었다. B는 A에게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집에서 그를 보니 아까는 밖에서 어둑 컴컴해서 몰랐는데 A의 옷차림과 행색이 거의 노숙자 같았다. 

몸에서는 퀴퀴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았고, 얼굴도 꺼칠하고 무척 수척해 보였다. 얼핏 보기에는 저녁 식사도 안 한 것 같지만, 밥을 먹었냐고 내가 물어볼 처지는 아니었다.

B는 거실 한편 소파를 가리키며 A에게 저곳에 잠깐 앉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커피 한잔 따뜻하게 먹고 가라고 했다. A는 아무 말도 못했다.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미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한참 지났다.

우리는 아무런 말 없이 그냥 그렇게 있었다.


나는바람둥이다


도대체 A는 B를 왜 찾아온 것일까?

A는 B가 가져온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다가 물도 한 잔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거실 장식장에 있는 양주를 한 잔만 마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렌타인 30년산 짜리를 A는 가리켰다. B는 A의 무례해 보이는 주문에 거절하고 당장 꺼지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도 올라올 것 같았지만 그냥 참았다. 그리고 그냥 잔을 꺼내서 양주 한 잔을 따라주었다. A는 거침없이 양주 한 잔을 들이켜고,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내가 당신을 버린 죄가 너무 커서 할 말이 없소" 

이 말과 함께 A는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혹시라도 밖에서 누가 이 소리를 들었다면 아이들이 엄마에게 혼나서 서럽게 우는 것은 아닌지 모를 정도였다. 

A는 흐느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먼저 F에 대한 이야기부터 늘어놨다. 자기가 F와 같이 동거를 한 것은 맞지만 사실은 자신이 피해자였다는 것이다. F가 자신의 이름으로 대출을 받고, 또 바지사장으로 어디에 등록을 해놔서 졸지에 엄청난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되었으며 재산파탄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B는 반신반의했지만, F가 회사를 그만둘 때 이런저런 이상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게 사실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F가 돌연 사표를 쓰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회사에서도 이상한 일이 있었다지만 B에게는 직접적인 피해가 없어서 관심도 없었던 기억이 났다.

A는 F에게 철저하게 이용을 당했고 이후에 길거리를 전전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몸에 이상징후가 왔는데도 병원에도 못 가고 있다고 자기 신세도 한탄했다. 그러면서 전적으로 제주도 사건은 자신의 잘못이며 정말 그때 불륜사건은 용서받지 못할 짓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또한 같은 직장에서 여직원을 건드려 임신 시킨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그 임신은 그 여자가 당시에 자신과 또 다른 남자를 동시에 만나면서 생긴 일이라 했다. 

그 여직원이 출산을 하고 아이 아빠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그것은 해명이 된 일이라 했다. 같은 직장에 있던 여직원을 건드려서 관계를 맺었지만 이 또한 그 여직원의 유혹이었고 회식이 끝나고 딱 한번 모텔에 같이 간 것 뿐이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제주도 출장을 핑계로 다른 여자와 놀러간 것은 정말 용서를 받지 못할 짓이었고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직장 내 임신한 여직원 사건은 정말로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한편 전주에서 F와의 관계는 A가 오히려 피해자라는 것이다. 

알고 보면 자신의 과거에 있어서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고 되레 자신도 운명에 있어서는 피해자라는 것이다. 

A는 차분하고 조리 있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는 식이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훌쩍 밤 12시가 지났다. 

밤이 되어 A에게 나가라고 말을 할려 했지만, 노숙자 같은 이 사람을 당장 밖으로 보내는 것은 인간적인 것 같지 않아서 거실 소파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그냥 나가라고 B는 말했다.

A는 일단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리 해주니 고맙다고 했다. 사실 나가면 밖에서 잘 데는 없고 어디 지하도 입구에 있는 종이박스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자신의 처지를 그냥 말했다. 

따뜻한 집에서 자본 지가 언제인지 모른다는 말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A가 아무리 불쌍해 보여도 더 이상 그 남자에 대해 관심을 가져서도 안되고, 슬퍼할 일도 아니기에 그냥  욕실에서 우선 씻고 자라는 말을 전하고 B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한 때는 그래도 자신이 그 남자 품 안에서 행복을 느끼면서 같은 침대에서 잠들었지만 이제는 따로 자야만 했다.

B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서 불을 끄고 많은 생각에 빠졌다. 

어느새 이 사람과 헤어진지도 20년이 되었고 부부의 인연도 다하고 그냥 사람의 인연만 간신히 이어졌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정말 A가 말한 것이 사실일 것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F에게 사기를 당하고, E라는 같은 직장 여직원에게도 자신의 애도 아닌데 농락당했던 A가 한편으로는 불쌍하고 측은해졌다. 그리고 늙어가면서 집도 절도 없이 노숙자로 헤매며 아빠가 살아간다는 것을 만일 대학생인 딸이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할까? 

야멸차게 아빠를 돌려보냈다는 사실을 만일 나중에 딸이 알게 된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까? 

사실 딸에게는 아빠가 오래전에 객지에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그 후 소식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딸은 늘 아빠를 그리워했다. 

딸은 아빠가 있는 친구가 늘 부럽다고 했다. 머리가 또 혼란해져 가는 것을 B는 느꼈다. B는 온 밤을 꼬박 새웠다.

To Be Continued By Con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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